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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it 대기업에서 극단적 선택이 있었다.과도한 업무와 실적, 동료 평가에 대한 부담감에 따른 선택이었다.나는 그 사건을 이야기 해준 동료에게 이렇게 외쳤다.“아니, 그냥 그만 두면 되잖아!”그 회사가 뭐길래, 그 동료들이 뭐길래. 세상은 훨씬 더 넓지 않은가.뭐 조금 더 작은 기업이면 어떤가. 조금 다른 일이면 어떤가.그 회사, 그 일이 아니면 정말 안되는 것이었나.그의 자세한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 맞다.하지만 그 말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충고이기도 했다.나도 살면서 문득 ‘아 그냥 가다가 사고라도 났으면’ 혹은‘이제는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혹시 우울하거나 두려운 일요일을 맞았다면,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꼬리를 물기 전에다른 의미로써 여러 ‘극단적’ 상상을 하..
참으로 교양있는 21세기 우리 사회에서는 '잘 참는게' 미덕이다.어려서부터 그렇게 학습되어 왔다.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무모한 말에, 무례한 태도에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참는 게 이기는 것이다""지는 게 사실 이기는 거야"결국 참는 사람, 참지 않는 사람 모두 "승리"하는이상한 정신승리 논리를 펼치면서 말이다. 2019년 여름.첫 취업으로 상경 했던 때, 모친보다 한 살 어린 대표는결국 내 안에 내재되어있던 봉인된 화를 터트렸다.나는 도대체 무엇에 그렇게 화가 났을까?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꼽자면,대표는 본인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고집이 있었다.그것이 프로젝트 회의건, 사적인 대화건 대립되는 의견에 대해서본인의 주장이 반드시 이겨야만 끝이 났다.그래서 프로젝트 리뷰도 시작됐다 하..
팀원들과 점심식사 후 카페에 들렀다. 곧 할로윈데이인지카페 테이블엔 호박 얼굴 모형이 놓여있었다. 그때 직장 선배가 물었다."요즘 친구들은 할로윈데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그 말인즉슨 이태원 참사 이후의 할로윈 문화에 대한 물음이었다.그 선배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최근 매체에 할로윈 소재가 뜨는 것을 보고선배에게 무엇이냐 물었지만 설명을 하기가 난처했다는 것이 선배의 에피소드였다.젊은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있었지만,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나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이 분위기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먼저 운을 떼었다."할로윈데이와 참사는 별개라고 생각해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카뮈가 쓴 이방인의 첫 문장이다.누군가의 죽음에 슬퍼 해야하는 것은 ..
생애 가장 시간이 안갔던 때는 단연 군시절을 꼽을 수 있다."아직도 시간이 이것 밖에 안 지났나.."하루하루가 길고 질겨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마냥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한 편으론 수명이 길어진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사실빨리 죽음에 다다르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킬링 타임용이다"그래서 난 군 전역을 이후로 이 말이 참으로 어리석게 들리기 시작했다.매 시간 일분 일초가 다 값져야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시간을 죽인다는 섬뜩한 관용적 표현 자체에 대해 말이다. 언제부턴가는 명절 오후 고속도로가 반갑기 시작했다.눈코 뜰 새 없이 죽음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아대는 내 시계가속도를 늦추어 하루를 음미하는 기회를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간 내게 아침이란11m 막타워나 다름 없었다.공수 훈련을 위해 훈련소에서 내던져지는 막타워 말이다.한 발만 내딛으면 끝나버리는 건데, 5분만, 10분만을 미루게 되는 것은아침의 높이 또한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는 11m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아침에 눈을 뜨기 싫다는 건 삶에 대한 동기가 없다는 것. 어쩔 수 없이 매일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면 세상이 나를 깨우는 것보다내가 세상을 깨우는 편이 조금 더 낫다.일찍 일어나면 내가 세상을 깨우는 느낌이고늦게 일어나면 세상이 나를 깨우는 기분이다.아침을 미루고 미루다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건회의 시간, 여유롭게 커피도 일찍 내리고 안건 내용도 미리 살펴본 사람들 사이에헐레벌떡 착석한 기분이랄까. 타인의 시간을 좇는 기분은 온종일 지속된다. 세..
거리에 스쳐지나가는 매력적인 사람들에게서 종종 쓸데없는 피로감을 느낀다. "나랑 맞지 않은 면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비단 이성관계 뿐만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은 절대 잘 맞을 수 없다. 잘 맞는 "부분"이 잘 맞지 않는 부분을 어느정도 가릴 수 있다면 우리는 겨우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사소한 것에 다툰다는 것은 사소하지 않은 부분들이 잘 맞는다는 희소식이 될 수 있다. 연인과의 만남에선 대개 두 번 눈이 멀게된다. 첫 번째는 처음 만나는 때다. 사랑은 무지에 기초한다고, 아직 모르는게 너무나도 많은 이 사람을 내가 사랑씩이나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익숙해지면서 잘 맞는 부분을 망각하는 것이다. 멀쩡한 과자 한 봉지를 두고 부스러기만 바라보다 눅눅해진 과자를 통째로 버리게 되는 꼴이 되는..
상사의 의견에 의문을 품으면그 이견이 다툼 없이 인정되는 사실이라 할지라도고집있는 사람이 된다.여기서 따지고 드는 제스처가 더해지면 상대는 더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아지게 된다.그 말인즉슨 정보를 얻을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백 마디가 다 유익할 순 없겠다.내게 필요한 정보는 백 마디 중 열 마디만 되어도부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사회생활"혓바닥에 딸랑거리는 쇠방울 고리를 거는 것이 아니라현명한 처세란 무엇인가.굳이 하나하나 반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적당한 오해, 적당한 억울함그것이 필요한 것이다.(오해도 대게 썰물에 드러나는 유리병처럼쉽게 그 진실이 드러나고, 목격자는 다음부터물에 잠긴 갯벌을 쉽게 가늠하려 하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일론머스크와30분 간 대화를..
나 그리고 가족, 연인, 친구, 동료. 단결의 힘은 그 집합 단위만큼의 크기나 힘을 가진 "적"이 필요하다. 내지는 그만큼의 사건이 필요하다.
우리는 좋은 사람 내지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을 때 비굴해진다. 이는 어쩌면 어느 공동체에서 외로워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소속된 정당이 있고, 입지가 어느정도 다져진 상태라면 꽤나 배짱있게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개 무소속짜리 하나가 그 세계에 살아남기 위해선 적당히 비위를 맞추고 기어야 한다. 위대한 외침은 목숨이나 걸고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