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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e2e 2024. 10. 28. 21:14

팀원들과 점심식사 후 카페에 들렀다. 곧 할로윈데이인지

카페 테이블엔 호박 얼굴 모형이 놓여있었다. 그때 직장 선배가 물었다.

"요즘 친구들은 할로윈데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그 말인즉슨 이태원 참사 이후의 할로윈 문화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 선배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최근 매체에 할로윈 소재가 뜨는 것을 보고

선배에게 무엇이냐 물었지만 설명을 하기가 난처했다는 것이 선배의 에피소드였다.

젊은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있었지만,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나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이 분위기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먼저 운을 떼었다.

"할로윈데이와 참사는 별개라고 생각해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카뮈가 쓴 이방인의 첫 문장이다.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 해야하는 것은 법도 아니고 의무도 아니다.

엄마가 죽은 날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이,

엄마가 죽은 다음 날 이성에게 정욕을 느낀 것이 '죄'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엄마도 결국 타인이고, 슬퍼하는 것은 자유다.

나의 할머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이뻐하셨다. 편애하셨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어릴 땐 누나와 사촌 형들에게 질투를 받기도 했다.

돌아가신 지 벌써 9년이 되었나,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사랑하는 할머니의 장례식 때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화장하러 가는 날 흰 진눈깨비가 날린 기억만 있지, 돌아가신 날짜도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매년 할머니 기일에 할머니를 추모하고 있지 않다.

그런 내가 이름도 모를 사람들에게 추모라는 것을 해야하나.

이태원 참사는 내게 큰 충격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안타까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슬퍼해야 한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슬퍼해야 하는가.

이태원의 정확히 어느 골목부터 어느 골목까지 즐거워선 안 되는가.

소리내어 웃는게 안 된다면 미소까지는 되는건지, 누가 기준이라는 걸 정할 수 있는건가.

 

그렇다면,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외 나라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옛 선조들의 얼과 희생이 담긴 365일을 우리는 묵념만 하면서 살아야 마땅한 것이다.

부친상, 모친상을 당한 당일에도 지인들은 와서 말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부모가 돌아가실 적에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마당이다.

정리하자면

이태원이라는 지역은 무슨 잘못인가.

할로윈문화는 또 무슨 잘못인가. 한국 문화도 아닌 것이 말이다.

 

이태원 참사는 안전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인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이태원을 가지 말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할로윈을 즐기지 말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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