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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나의 오랜 치부다.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 일했지만, 만족스러운 결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청춘의 전부를 들인 일이었기에 '좋은 경험이었다'라며 웃어넘길 수 없었다. 딱 한 번 용기내어 엄마에게 미대 진학을 얘기했다.형편이 어려워서 지원할 수 없다는 말은 예상했던 바라 아프지 않았으나그 다음 말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다."네가 그림을 그려봤자 얼마나 그린다고.그냥 만화 조금 따라 그리는 정도잖아." 그래도 행동하는 나는 생각하는 나보다 언제나 강했다.끝내 낙서를 멈추지 않은 것이다. 비록 전문대였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을거란 기대로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매체에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디자이너들의 눈빛에서는모종의 확신과 애정이 읽힌다.나는 어떠..

나는 어릴 때 출중하다는 말을 별로 듣지 못하였다.다만 유별나게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옳지, 서울 가서 공부하자.' 매사에 성급하지 말아야 한다.무리하게 사물을 처리하려 들면 안 된다. 선친은 나에게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처세훈(사필귀정-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감)과 함께 늘 강조한 것은거짓과 꾸밈은 개인에게나 국가, 사회에도 대환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신용을 잃어서는 안 된다. 노怒할 줄 모르는 자는 어리석다.그러나 노할 줄 알면서 능히 참는 자는 현명하다고 한다. 사람은 일생을 통해 몇 번은 전기(전환점을 이루는 기회나 고비)를 맞는다.스스로 그것을 만드는 때도 있지만 느닷없이 찾아올 때도 있다. 사업이란 무엇인가..

팀원들과 점심식사 후 카페에 들렀다. 곧 할로윈데이인지카페 테이블엔 호박 얼굴 모형이 놓여있었다. 그때 직장 선배가 물었다."요즘 친구들은 할로윈데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그 말인즉슨 이태원 참사 이후의 할로윈 문화에 대한 물음이었다.그 선배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최근 매체에 할로윈 소재가 뜨는 것을 보고선배에게 무엇이냐 물었지만 설명을 하기가 난처했다는 것이 선배의 에피소드였다.젊은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있었지만,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나는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이 분위기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먼저 운을 떼었다."할로윈데이와 참사는 별개라고 생각해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카뮈가 쓴 이방인의 첫 문장이다.누군가의 죽음에 슬퍼 해야하는 것은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들을 자세히 보았는데 그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의 사소한 모습 하나에 이르기까지 나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없었다.그러나 그들은 하도 말이 없어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남자들은 거의 모두가 몹시 여위었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은, 눈은 보이지도 않고 다만 온통 주름살투성이인 얼굴 한가운데에광채 없는 빛만이 보여서였다. 그들이 앉았을 때, 거의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이가 빠져 버린 입속으로입술이 온통 다 말려 들어간 채 머리를 어색하게 수그렸는데, 그것이 나에 대한 인사인지 혹은그들의 버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라고 ..

강물같은 마음은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결국엔 제 알아서 가장 큰 강에 닿아 편안함에 이를 것이다.흘러가면 그것이 길인 것이다.

일 년에 고작 며칠,하는 일 없이 먹고 쉬다 일찍 올라가 봐야 하는 장손은한평생 꼬박 일하고 매끼 밥상 내오는 딸의 눈물방울까지 싹싹 긁어다 훔쳤다.진정 오랫동안 곁에서 보살펴준 사람을 몰라보는 것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다.

'말'은 만물의 프로토타입이다.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은 가장 먼저 '말'을 만들게 됩니다. 어둠을 밝히는 초의 역할은 전구의 발명으로 끝을 맞이했습니다.그런데 양초의 매출은 2000년대 이후에도 여러 선진국에서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습니다.현대인들이 초에서 '불을 밝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입니다.전기의 시대에 초는 '캔들'로 이름을 바꾸고1.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물건 또는2. 향기를 즐기는 물건으로서 살아남았습니다.최첨단 LED 전구보다 훨씬 비싼 캔들이 있을 정도이지요. 투자자들이 돈이 스스로 일하게 만들 듯이,기획자는 말이 스스로 일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Concept'의 어원은 동사 '잡다'를 뜻하는 라틴어라고 합니다. 컨셉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전체를 관통하는..

우리는 재미있는 일 가운데 가장 재능있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가장 재능있는 것과 가장 재미있는 것이 일치할 수도 있으나결국 직업이라는 것을 가진 시점에서 가장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직업이 아닌 취미라는 것들이다.그냥 재미가 없어진다.생계 수단인 것이다.싫어져도 쉽게 떠날 수는 없다.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직업이다. 가장 큰 무기는 곧 약점이 된다.개그맨이 무대에서 음이탈을 하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으나웃기지 못했다면, 그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직업이라는 것의 속성이 그런가보다.문제 없이 잘 해나가고 있다 하더라도,도처엔 언제나 뛰어난 자들이 차고 넘친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과설 자리를 밀어내는 열등감과또 하루를 문제없이 소화해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출근을 해야 할 동기를 주는 것은 무엇일까. 취미와..

부동산에서는 레버리지가 대부분 돈의 성격이었지만 세상에서는 돈이 아닌 시간으로 대체됐다. 당신이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당신의 사장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신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즉, 합당한 돈을 주고 당신의 시간을 빌린 것이다. 네이버가 돈을 버는 이유, 유튜브가 돈을 버는 이유는 사람들이 시간을 소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간을 오랫동안 빼앗을 수 있다면 그 시간에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 부동산에는 나름의 생태계가 있다. 도시의 생성이라는 부분만 놓고 보면 '지주 - LH - 시행사 - 건설사 - 분양사 - 은행 - 분양 계약자(투자자 및 실거주자)' 순으로 먹이사슬이 형성된다. 일자리를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되고 인구가 집중된다. 당연히 일자리 인근 지역은..

모나미가 60여 년이 넘도록 문구 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기업의 본질을 오랜 시간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본질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될 수도 있고 어떤 태도가 될 수도 있다. 모나미 역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돌고 돌아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필기구를 만드는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브랜드 이미지는 고객이 브랜드를 인지하는 방식이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브랜드가 타깃 고객에게 인식되기를 원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브랜드의 본질, 브랜드의 고객 가치가 놓여야 한다.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부터 시작해야 한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에서 언급한 수많은 키워드 중 가장 주목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