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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1942)

2e2e 2024. 10. 15. 23:03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들을 자세히 보았는데

그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의 사소한 모습 하나에 이르기까지 나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도 말이 없어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남자들은 거의 모두가 몹시 여위었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은, 눈은 보이지도 않고 다만 온통 주름살투성이인 얼굴 한가운데에

광채 없는 빛만이 보여서였다. 그들이 앉았을 때, 거의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이가 빠져 버린 입속으로

입술이 온통 다 말려 들어간 채 머리를 어색하게 수그렸는데, 그것이 나에 대한 인사인지 혹은

그들의 버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모두 문지기를 둘러싸고 나와 마주 앉아서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는 것을 내가 알아차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한순간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서 거기에 와 앉아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인상을 받았다.

 

 

 

노인들 중 한 사람이 잠이 깨어 기침을 몹시 했다.

그는 커다란 체크무늬 손수건에 가래침을 뱉고 있었는데,

뱉을 적마다 뱉는다기보다는 마치 잡아 뜯는 듯했다.

 

 

 

매우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나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마치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은 그날 밤 덕분에 우리들의 친밀감이

한층 두터워지기라도 했다는 듯이.

 

 

 

나는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 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기에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들을 따라 잡았을 때 페레스의 그 얼굴.

신경질과 힘겨움의 굵은 눈물방울이 그의 뺨 위에 번득이고 있었다.

그러나 주름살 때문에 더 이상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눈물방울은 그 일그러진 얼굴 위에 퍼졌다가 한데 모였다가 하며

니스 칠을 해 놓은 듯 번들거렸다.

 

 

 

엄마의 관 위로 굴러떨어지던 핏빛 같은 흙, 그 속에 섞이던 나무뿌리의 허연 살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바닷가로 나와서 옷을 갈아입을 때, 마리는 빛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해 주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꼭 끼고서 급히 버스를 잡아타고 돌아왔고 우리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

곧장 침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창문을 열어 두었는데 여름밤이 우리의 갈색으로

그은 몸 위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참으로 상쾌했다.

 

 

 

 

영감의 이야기를 마리에게 해 주었더니, 마리는 웃었다.

그녀는 내 파자마를 입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웃었을 때,

나는 또 정욕을 느꼈다.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점심을 준비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또 웃어 댔으므로, 나는 키스를 해주었다.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 하고 마리는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을 했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 쪽이고, 나는 그저 승낙을 했을 뿐이다.

그러자 마리는, 결혼이란 건 중대한 일이라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아니야" 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자기와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같은 청혼이 있었어도 승낙을 했을 것인가, 다만 그것만이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생각해 보는 듯했으나,

나는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다. 잠시 또 묵묵히 있다가 그녀가 말하기를,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라고, 아마 그 때문에 자기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노라니까, 마리는 웃으면서 내 팔을 붙들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언제든지 그녀가 원한다면 곧 결혼을 하자고 대답했다.

 

 

 

우리들은 대로를 택해 시내를 거닐었다. 여자들이 아름다웠다.

나는 마리에게 그 점을 눈여겨보았느냐고 물었다. 마리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잠시 동안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녀가

나와 함께 있어 주었으먼 싶어서,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마리는 그러고 싶지만 볼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나의 집 근처에 이르렀기에,

나는 잘 가라고 인사말을 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내가 무슨 볼 일이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

하고 말했다. 그것을 알고 싶긴 하지만 물어볼 생각을 미처 못 했을 뿐이었는데, 마리는 그것을

나무라는 눈치였다. 그러고는 나의 어색한 표정을 보고 다시 웃더니, 불쑥 온몸으로 달려들어

입술을 내게로 내밀었다.

 

 

 

나는 남아서 여자들에게 사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마송 부인은 울고 있었고,

마리는 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설명을 하는 게 귀찮아서 이야기를 그쳐 버리고,

담배를 피우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절반쯤 감은 그의 눈꺼풀 사이로 이따금 그의 시선이 새어 나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평선 위로 조그만 증기선이 지나갔다.

나는 한쪽 눈 가장자리에서 검은 얼룩같이 보이는 그 증기선을 분간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랍인으로부터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 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했고 졸렸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것,

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그에게 딱 부러지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은 결국 별로 소용이 없는 일이었고

또 귀찮기도 해서 단념하고 말았다.

 

 

 

내가 엄마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네,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사랑했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 순간 그때까지 규칙적으로 타이프를 치고 있던 서기가 키를 잘못 짚은 것 같았다.

 

 

 

처음 형무소에 수감되어서 나에게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내가 자유로운 사람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괴로웠다. 그러나 바로 그때 치러야 했던 수고가

그 몇 달 동안을 지내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가령 여자에 대한 정욕이 고통거리였다.

나는 젊었으니까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별히 마리만을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나는 그저 어떤 여자를, 여러 여자들을, 내가 알고 지냈던 모든 여자들을,

내가 그들을 사랑했던 모든 상황들을 어찌나 골똘히 생각했는지 나의 감방은 그 여자들의 얼굴로

가득 들어차고 내 정욕으로 충일했다.

 

 

 

문제는 다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배운 뒤부터는, 심심해서 괴로운 일은 없었다.

가끔 나는 나의 방을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방의 한구석에서 출발해서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인데,

그러면서 도중에 있는 것을 모두 마음속으로 따져 보곤 했다.

처음에는 아주 빨리 끝나 버렸다. 그러나 다시 되풀이할 적마다 조금씩 길어지는 것이었따.

왜냐하면 있는 가구를 하나하나씩 기억해 내고, 그 가구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떠올렸고, 또 그 물건마다 그 세부를 골고루 생각하고, 그러한 세부에 있어서도

상감이라든지 갈라진 틈이라든지 이빠진 가장자리라든지 그런 것들에 관해서, 그 빛깔 또는

결 같은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날들이 어찌나 길게 늘어지는지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쳐 나서 경계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하루하루는 그리하여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어제 혹은 내일 같은 말만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어느 날 간수로부터 내가 들어온 지 다섯 달이 지났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의 말을 믿기는 했지만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로서는 언제나 같은 날이

내 감방으로 밀려오는 것이었고 나는 언제나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 달 이래 처음으로 나는 내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나는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내 귀에 울리고 있었던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동안 줄곧 내가 혼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분, 바로 이 법정은 내일 가장 가증스러운 범죄,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잔학한 범죄 앞에서는 상상력조차 뒷걸음친다는 것이었다.

 

 

 

다시금 종이 울리고 피고석 문이 열렸을 때 나에게로 밀려온 것은 장내의 침묵,

그리고 그 젊은 신문기자가 눈을 옆으로 돌린 채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그 야릇한 감각이었다.

나는 마리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시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장이 나에게

이상스러운 말로, 나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되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턱없는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제공한 판결과, 판결이 언도된 순간부터의 가차 없는 전개 과정과의 사이에는

어처구니 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이 17시가 아니라 20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문으로 달려가 판자에 귀를 대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기다리노라면,

나중에는 나 자신의 숨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소리가 마치 헐떡이는 개의 숨결과도 같아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결국 나의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나는 다시 한 번 스물네 시간을 벌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든지 예순 살에 죽든지 별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잠시 동안 두 팔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숙인 채 앉아서 자기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손은 가냘프고 힘줄이 드러나 보였는데 날렵한 짐승을 연상케 했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었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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