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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대만 멀쩡한 놈" 여러 운동을 경험해왔지만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동작이 없었다. 군대에서 역시 체육대회가 열리면 잔디밭 귀퉁이에서 응원가만 불러야 했으나, 그 마저도 발성이 좋지 않아 금세 목이 쉬기 마련이었다. 그런 내게도 딱 한 번 칭찬을 받은 운동이 있다. 내향적인데다 깡은 더욱이 없던 내게 처음 칭찬을 해준 사람은 복싱 관장님이었다. "생활체육대회 나가볼래?" 작지 않은 키에 체중 미달로 보이는 나는 복싱을 하기에 좋은 체형이었던 것이다. 제안만 종종 받았다가 마침내 올해는 참가 등록을 하게되었다. 팔자에 없을 줄 알았던 새벽운동 로드웍부터, 주말엔 있는 힘껏 때리는 풀스파링까지 정신 없이 달려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직장에도 일이 워낙 몰린 터라 긴장할 새 없었으나 시합 일주일 정도..
오후 7시에 시작해 오전 7시에 끝이 나는 서빙. 금요일 수업이 끝나면 이곳으로 넘어와 일을 했고, 새벽 5시쯤 조기 퇴근해 새벽기차로 집에 오면 잠깐 눈만 붙이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그중 단연 힘들었던 일은 바로 새벽기차를 타는 시간. 고단한 하루 끝에 30분가량 머무르는 따뜻한 기차 안은 온갖 술과 마약에 찌든 공간처럼 혼이 나가 사경을 헤매는 듯하였다. 감히 장미란도 나의 눈꺼풀을 쉽게 들어 올리지 못했으리라. 몇 번은 잠들어버려 두세 역을 넘어간 적도 있었고, 그런 날이면 또 추위에 벌벌 떨어가며, 반대편 다음 기차를 기다렸다가 2시간만 자고 출근하기도 했었다. 당연히 제시간에 내리는 게 맞는데 자리가 많음에도 입석 칸에서 쪼그려뛰기라도 하며 버티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앞으..
그 누가 가장 좋을 때라 말하는가, 이제 막 테두리를 벗어난 병아리 새끼처럼 사소한 바람에 살갗이 쓰라려도 언제 들개에게 물어 씹힐 지 몰라도 그 알량한 껍데기는 벗어났기 때문인가. 아직 세상을 잘 모르기 때문인가.
2015.02~2019.01 경영자가 될 것인가, 디자이너가 될 것인가. 18년 어느 어스름한 저녁, 딱딱한 구두에 구겨놓은 발이 지하철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눈감고 기대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 날은 떨리는 손에 명함과 포트폴리오를 쥐고 하루종일 발품을 팔았던 날이다. 그것은 좌절이 아니었다, 건강한 물음이었다. 나는 반응을 보인 곳이 아니라, 내가 찾아간 곳에 성취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인 기간을 더해 어언 4년에 가까운 시간. 나는 계획과 전혀 다른 길로 발견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기적이었다. 우여곡절의 산증인이 된 2018년 12월. 나의 기적은 첫째,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둘째, 그것으로 돈을 받기 시작했다. 셋째,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림 못 ..
2015.03~2018.10 군을 전역하면서 완전한 독립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선적으로 경제적 독립이 되어야 했고,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거란 확신 또한 있었기에 알바천국에서 가장 높은 페이의 주말 알바를 검색했다. "돌잔치 결혼식 사회자 구합니다." 일당이 무려 10만원이었다. 한 달을 꼬박 채우면 80만원이나 되는 것이었다. 고되고 힘든 일에는 자신 있었으나 이 일은 천부적인 끼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망설여졌지만, 구인 소개글에 가장 강조되는 문구가 보였다. "타고나지 않아도,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 고민 끝에 전화를 했다. "알바천국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사무실은 간판 하나 없는 상가의 4층이었다. 3층 즈음 올라서자 시끌벅적한 소리가 웅웅 거렸다...
번호대기표를 받았다. 적지 않은 남은 대기자 수 인원이 적힌. 마감시간을 앞두고 마음 졸이다 겨우 호명된 번호에 등록금을 입금했다. 또 다른 학교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고등학교 그 두 번째 칸을 채울 무렵, 뒤늦게 꿈을 좇았지만 성적마저 바꿀 수는 없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었지만 나는 물에 젖은 종이비행기였다. 그저 붙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안도였다. 3월의 따스한 봄 햇살에 물기를 빼앗기고 바람의 도움 받아 조금씩 이동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재밌었다. 첫 비행, 목적지를 알고도 피어난 꽃에 한 눈 팔려 비행기의 본분을 잃어버렸으나 첫 봄은 나쁘지 않았다. 취미 혹은 놀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과목들이 전공과목이라 한다. 12년간의 설움이 낮게 흔들리는 어깨에 탈탈 털려 허탈한 소리..
2013.05.27~2015.02.26 늘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나, 나는 내 자신이 싫었다. 그런 내게도 피해갈 수 없는 시간, 군대. 나는 사실 군대를 빨리 가고 싶었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왕 가는 군대, 듣도 보도 못한 해병대를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엔 해병대를 전역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 문화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네이버 검색 뿐이었다. 이상한 말들이 많았다. 구타와 가혹행위, 총기 난사. 덜컥 겁이 났지만 거기서 버티지 못하면, 남은 인생도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의 나로서는 엄청난 선택이었다.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고 지원하기를 세 번, 무려 두 번이나 떨어졌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라는 말을 되뇌며 지원 과정서..
+2021 초등학교 5학년,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마트를 처음 가보았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신기했지만 가장 큰 이목을 끌었던 건 바로 삼겹살 청년이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씩씩한 청년의 우렁찬 목소리는 최소 성악과 3학년 쯤 돼 보였다. "삼겹살 한 근에 만 원!" 짙은 눈썹 아래 떠오른 눈동자마저 여유로 가득해 괜시리 기가 죽었었다. 그때 함께 지켜보던 엄마가 내게 물었다. "니도 나중에 저래 할 수 있겠나?"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나의 내성적인 성격에 대한 결핍을 낭비하듯 발산하는 그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들었지만 애초에 나와는 다른 도면으로 설계된 인간처럼 참 낯설고도 멀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약 9년, 스물 하나가 되던 해, 군 입대를 앞두고 집 근처의 ..
한 달쯤 일했을까, 방학 단기아르바이트생임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회식자리에 참석하게 됐다. 그 날 오리고기집에서 처음 사장님을 뵙게 되었는데, 그는 평소 선을 아슬하게 넘나드는 과장들과는 다르게 곧 근무 기간이 끝나는 스무살 남짓한 내게도 꽤나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어딜가나 막내였고, 심부름꾼이었던 나도 존중받는 사람이었다. 마음의 문이 열리고 건너온 메시지는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도 선명하다. 그것은 사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그의 신조였다. "일부러 불편한 자리에 가는 것." 동네 친구들과 매일 갖는 무의미한 술자리와 같이 편한 자리만 찾게 되면 득이 될 것이 없다, 낯선 사람과 불편한 자리를 일부러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얻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