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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2015)

2e2e 2021. 7. 4. 19:31

2013.05.27~2015.02.26

늘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나, 나는 내 자신이 싫었다. 그런 내게도 피해갈 수 없는 시간, 군대.
나는 사실 군대를 빨리 가고 싶었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왕 가는 군대, 듣도 보도 못한 해병대를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엔 해병대를 전역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 문화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네이버 검색 뿐이었다.
이상한 말들이 많았다. 구타와 가혹행위, 총기 난사.

덜컥 겁이 났지만 거기서 버티지 못하면, 남은 인생도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의 나로서는 엄청난 선택이었다.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고 지원하기를 세 번, 무려 두 번이나 떨어졌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라는 말을 되뇌며 지원 과정서부터 교훈을 얻었다.


가슴 졸이는 첫 입대날, 날씨도 우중충하게 비가 오는둥 마는둥 했고, 마지막 점심 밥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심장이 두근거리기만 했다.

그렇게 엄마와 이모와 이별하고 동기들과 손 잡고 걸어가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평생 살아오던 사회에서 벗어나 군대라는 억압된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인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기들이 천 명이 넘으니 썩 우울하진 않았다.

오히려 하루 하루 나를 바꿀 기대로 걸어갔다.

 

우여곡절의 7주가 흘렀고,

땡볕 아래서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던 건, 시원한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게

무엇이 그리 힘들다고 대단한 내색을 표했나 하는 반성. 이전에 했던 모든 투정들이

배부른 소리에 정신나간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곧 이은 첫 실무 배치, 한 평생 동안 그렇게 위축되고 경직된 적은 처음일 것이다.

시뻘건 색깔만 보여도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수료식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병으로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가 살기 싫었다.

총 기상부터 소등 이후 30분까지 나는 긴장의 끈을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군대란 그런 곳이다. 먹고 자고 싸는 모든 장소가 감시 구역. 잠시 고개만 돌리면 살기 어린 선임들이 서 있다.

스물한 살, 다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욕을 숨 쉬듯 먹었지만 시간은 흘렀다.

 

어느덧 일병, 상병, 병장.

군대에서 멋진 계획을 세우리라 마음 먹겠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 부여와 검열은 계획대로 살기 힘들게 한다.

규칙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속된 말로 '짬'이 차면서 개인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군대의 모든 자투리 시간을 계발에 쓰게 되니 어느샌가 주변에 사람이 없어졌다. 가족이라 칭하는 생활반도 어색했고,

정말 친한 선, 후임 동기를 제외하곤 소통이랄 게 없었다. 

언제나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순 없는 것이었다.

바깥도 다를 바는 없다. 나를 위한 시간이 늘면, 주변과의 시간이 줄어든다.

 

배운 점이라 하면 불편한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법,

억압과 통제 속에 인내하는 법,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례를 몸소 경험하지만

중요한 전제조건은 '모든 일에는 배움이 있다.' 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사람을 많이 얻지 못한 점이다.

어느 일병 외출날, 다른 부대 소대장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군생활을 하면서 어떤 걸 제일 많이 얻어간다고 생각하나?"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잘 하지 못 했더니,

덧 붙여 "군대에서 가장 크게 얻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전국 각지에서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계산 속에서 벗어나

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진짜 모습을 보고 친해질 수 있는 곳이다." 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어리석게 나만의 시간을 택했다.

 

21개월을 한 장에 담으려니 쉽사리 압축 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설렐 줄만 알았던 전역날이,

어쩌면 씁쓸한 느낌이 조금 더 큰 날이었다.

군대는 전쟁을 준비하는 곳이었는데

사회는 전쟁을 해야하는 곳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훈병 시절
뜨거운 땀방울로 과거의 나를 씻었고
내 이병 시절
마음둘 곳은 소등 이후 모포 속밖에 없었다.
내 일병 시절
굳게 다문 입술에 보이지 않는 눈물이 맺혔고
내 상병 시절
이젠 나와 같은 후임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병장 시절
그제야 나를 대하던 선임들이 이해가 됐고
나 이제 그토록 갈망하던 전역을 하니
위병소를 나가는 가벼운 발걸음 뒤에
무거운 아쉬움이 자국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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