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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대회 본문
"허우대만 멀쩡한 놈"
여러 운동을 경험해왔지만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동작이 없었다.
군대에서 역시 체육대회가 열리면 잔디밭 귀퉁이에서 응원가만
불러야 했으나, 그 마저도 발성이 좋지 않아 금세 목이 쉬기 마련이었다.
그런 내게도 딱 한 번 칭찬을 받은 운동이 있다.
내향적인데다 깡은 더욱이 없던 내게 처음 칭찬을 해준 사람은
복싱 관장님이었다.
"생활체육대회 나가볼래?"
작지 않은 키에 체중 미달로 보이는 나는 복싱을 하기에 좋은 체형이었던 것이다.
제안만 종종 받았다가 마침내 올해는 참가 등록을 하게되었다.
팔자에 없을 줄 알았던 새벽운동 로드웍부터, 주말엔 있는 힘껏 때리는
풀스파링까지 정신 없이 달려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직장에도 일이 워낙 몰린 터라 긴장할 새 없었으나
시합 일주일 정도를 앞두고는 스트레스가 몰리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바둑인데, 같은 체급의 사람에 불과할텐데 말이다.
경기 이틀 전 유니폼을 받고서부터는 중압감이 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변기통에 유니폼 두 벌이 막혀 물이 안내려가는 꿈도 꾸고,
당일엔 건달들이 묶인 채 욱여넣어진 경찰차를 보는 꿈도 꾸었다.
자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은게다. 그럼에도 국방부의 시계가 흘러가듯
내 경기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경기장은 높고, 조명은 강해 위압감이 절로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목적에선지 격렬하게 서로를 두들겨 팼고,
희비는 2분이 채 안되어 갈리기도 했다.
드디어 내 차례, 헤드기어를 쓰자 내향적이다 못해 소극적이었던 지난 날들이
나를 덮쳤다. 지금까지 다져온 건실한 초석마저 흔들릴 지경이었다.
"이제 딱 4분, 4분만 지나면 이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경기는 2분만에 끝이 났다. 1라운드 TKO패배.
눈부신 조명아래, 번쩍이는 별을 보았다. 또 하나의 성장통이었다.
졌지만 해냈다. 이번에도 도망치지 않고 무대 위로 올라섰다.
클리셰하지만, 내가 경험한 우리 사회 역시 도망칠 구석은 없다.
피떡되도록 두들겨 맞을 줄 알고서도 제도권 안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이것이 도망치지 않고 다시 담대하게 올라야하는 이유다.
그래서 다시 오를 것이다. 안 되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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