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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미술대학 (2018) 본문
번호대기표를 받았다. 적지 않은 남은 대기자 수 인원이 적힌.
마감시간을 앞두고 마음 졸이다 겨우 호명된 번호에 등록금을 입금했다. 또 다른 학교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고등학교 그 두 번째 칸을 채울 무렵, 뒤늦게 꿈을 좇았지만 성적마저 바꿀 수는 없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었지만 나는 물에 젖은 종이비행기였다. 그저 붙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안도였다.
3월의 따스한 봄 햇살에 물기를 빼앗기고 바람의 도움 받아 조금씩 이동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재밌었다.
첫 비행, 목적지를 알고도 피어난 꽃에 한 눈 팔려 비행기의 본분을 잃어버렸으나 첫 봄은 나쁘지 않았다.
취미 혹은 놀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과목들이 전공과목이라 한다.
12년간의 설움이 낮게 흔들리는 어깨에 탈탈 털려 허탈한 소리로 빠져나갔다. 그 헛웃음은 해방감이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 동기들 어깨 너머 비친 화면으로 떨리는 나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때의 헛웃음은 열등감이었다.
지난날 낭비한 시간들의 대가는 가감없이 다가왔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핑계로 도망치지 마라, 한계를 넘는 것은 오직 노력이다."
휴학과 군 입대, 그것은 입학 선물이자 남자의 성인식이었다. 그야말로 고진감래, 그 뒤로는 꿋꿋하게 행군했다.
집중을 해야했고 혼자가 돼야 했다. 굳이 의지가 필요 없는 선택이 되었지만,
역사상 나 자신과 대화를 가장 많이 한 시간이었다.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시간들이었다.
수업에서도 알 수 있었다. 배움이란 나 자신에 잠재되어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꺼내는 것,
철저히 독립하여 자주적인 삶을 준비하는 것, 그리고 나를 만나는 것.
교수라는 버팀목은 내게 시각적 안정감만 줄 뿐이었다. 벗어났다.
드디어 활주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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