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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게 허리를 채 피지 못 하는 한 평짜리 고시원 401호에는 축축한 쥐 오줌 냄새가 머리맡으로 떨어진다. 처음 방을 보러 온 날 마스크를 쓴 여자가 내게 말했다. "요즘 이렇게 에어컨 따로 있는 고시원이 어딨어요, 어때요 좋죠?"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그 좋은 에어컨은 손이 닿지 않는 내부 깊숙이, 곰팡이들이 쇠고기 다시다를 쏟은 것처럼 눌러 붙어있었다. 물티슈를 들고 아무리 손갈퀴를 찢어보아도 닿지 못하는 그들의 세계. 적막 속 어색한 눈만 마주치다 결국 상생을 합의하였다. 부디 그 선만 넘지 말아라. 하지만 냄새가 선을 넘는다. 애써 밀어내려던 헛구역질이 한 달 만에 멈춘 것은, 나도 그들과 같은 종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나를 알아보았고, 나는 애써 부정해왔다.
자폐를 하나의 질환이라 일컫는 것은 가장 많은 유형에 속하는 정상이라 주장하는 질환자들이 본인들과 다른 특징을 가진 자들에 대해 펼치는 일방적 주장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여지려 애쓰고 있지 않나.
현대 사회의 불편한 진실, 몇몇 불행한 대한민국의 생명들은 그 시작이 되기 전부터 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삶이 설계되기도 한다. 이는 부모의 욕심일 수도 있겠으나 피해자라는 신분의 부모가 같은 피해자 신분만큼은 물려주지 않기 위한 간절함이기도 하다. 그 화두는 '어떻게 일 할 것인가.' 일의 형태에 따라 사회적 강자와 약자가 극명히 나뉘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은 '어떻게 일을 구할 것인가'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어느 부모의 교육에 대한 문제가 아닌, 한 사람의 삶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우려하게 되는 사회적 현상. 일자리 그리고 정규직,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일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반의 목숨을 위해 절반의 목숨을 소진해야 하는 것이다. 비단 본인 뿐만 아니..
인간사, 주관적인 해석이 난무할 수 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언제나 이해가 부족하고 무지하다. 이것이 곧 인간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인종, 언어, 문화 그 너머 세분화 되어야 할 단위가 '한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잠재된 욕망이 있다. 공동체 사회에 있어, 기초하는 모든 욕망을 배출할 수 없는 이유와, 그 기준이 되는 것은 타인에게 가해지는 피해를 근거로 한다. 그것은 곧 약자에 대한 보호를 근본으로, 법이라는 가이드라인의 형태로 계속해서 그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법과, 또 도덕은 다시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인가. 정의란 다수결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다시 약자가 소외되는 모순적인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즉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하여 틀린 것이라, 맞는 것이라 정의 내려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이 진행형이듯 존재하는 모든 정의 또한 그 시대의 찰나에 불과한 것이며, 또한 진행형이다. 무엇보다 우리 인식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인정할 줄 아는 것이 인류 발전의 첫 걸..
윤주와 지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했다. 윤주는 원자재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고자 했고, 지수는 색을 칠해 통일감을 주고자 했다. 결국 지수는 세상과 섞이기 위한 거짓말 또한 결국 스스로를 왜곡하는 행위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가 가장 행복하다.
사람은 집에서 산다. 비단 숙식의 기능만이 아니라, 외부와 차단된 사적 영역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불투명한 유리창이나 커튼같은 것들 말이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방, 더 작게는 서랍장 내지 일기장으로 완전한 나만의 공간을 찾아 둥지를 튼다. 오늘 날엔 휴대폰이 우리의 최소 공간으로 유통된다. 잠금장치가 탑재된 이동식 사적 공간, 집인 셈이다. 그 독립적인 공간은 사람이 솔직해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노출된 인간은 솔직해질 수 없다. 보여질 위험 요소가 하나라도 있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영역은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감추어진 '집'을 침범한다 해서 그 사람을 본 모습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