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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괴로움과 즐거움 (김영하-시민자치대학-2018)

2e2e 2021. 8. 16. 15:57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아가고 천천히 알아갑니다.

그리고 인간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를

하나하나 알아가게 돼요.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내가 하마터면 저지를 수 있었던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에요.

 

 

 

유혹에 강한 사람은 없다.

다만 아직까지 적절한 유혹을 받지 않았을 뿐이다.

 

 

 

소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돼요.

타인이 돼서 그사람이 겪은 감정을 겪는 거예요.

 

 

 

소설은 감정의 테마파크다.

여러분들이 에버랜드에 가서 기대하는 건 뭐예요?

다양한 걸 경험하는 거예요.

 

 

 

그러면 타인을 이해하는 것,

타인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만 중요한가,

여러분 자신도 이해하게 돼요.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여러가지 충동들이

있었잖아요. 이런 것들을 그냥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져요.

제가 중학교 때 느낀건데

사춘기가 되면 어떤 여러가지 감정과 

충동들이 생기잖아요.

몸도 커지고 갑자기 그 전까지는 아홉 살

여덟 살 때 안하던 것들도 하고 싶고 이렇잖아요.

그러면 이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어떤 것을 느끼냐면

‘나는 괴물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나는 왜 이런 생각이 많이 들지?’

그런데 책을 보니까 나랑 똑같은 일을 겪고

나보다 더 큰 일을 저지른 놈들이 거기 있어요.

심지어 그게 세계 명작이래요.

아, 나는 괴물이 아니구나.

자신을 너그럽게 보게 돼요.

 

 

 

인간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이걸 친구한테나 이야기할 수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소설을 보면

소설에는 작가들이 지난 몇백 년 동안

아주 훌륭한 문장으로 인간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 놨어요.

그리고 그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그게 중요한 거예요.

사람들이 “왜 소설은 어두운가요,

좀 밝은 이야기 써주시면 안 돼요?”

안 돼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기 위해서

만들어져 있어요. 그래서 소설을 볼 때

여러분들은 어떤 걸 기대하냐면

모든 일들이 잘 안 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주인공이 어떤 문제를 일으켜서

또는 어떤 일을 당해서

시련과 고통을 당할 것을 여러분들은

기대하게 됩니다.

 

 

 

타인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다양하죠.

그리고 점점 더 우리는 다양한 존재와 함께 협력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

타인을 뭐라고 생각해요? 이상한 사람.

정신 나간 사람, 이기적인 사람, 나쁜 사람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모두 세상을 잘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 많을 리가 없어요.

 

 

 

50대 아버지가 10대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으면

“대화하자.” 이러고 갑자기 쳐들어 가는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들을

먼저 읽어야 돼요.

읽고, 요즘 아이들은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이런 고통을 받는구나.

 

 

 

오해를 많이 하게 돼요 살아가다 보면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또 어른들은 아이들을.

 

 

 

타인과 내가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내 안에도 다양한 타인이 있어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내가 있죠.

첫 번째는 뭐냐하면 감정 때문에 그래요.

우리 마음 속에 다양한 감정들이 오가는데

이 감정을 우리는 사실 이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특히 성인들은 많이 그러실텐데

이 감정이 눈에 보이면 불편해요. 확 닫아놔요.

그리고 그걸 다 들여다 보면 폭발할 것 같아요.

화나고 서운하고 섭섭하고 기분 나쁜 것.

이걸 다 눌러놓기 때문에 압력밥솥처럼 가득 차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특히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어, 얘기치 않게 자기 감정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작가들이 그걸 써놨거든요.

그래, 이게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구나.

 

 

 

소설은 감정의 보호지

주제를 숨겨놓는 보물찾기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고통 시련 이런 것들을

주인공과 함께 겪으면서 내가 이런 일을 겪으면

어떻게 될까, 또 이런 일을 겪은 타인들은 어떤 마음일까를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한 소설의 목적이랄까 기능이랄까

그런 것이고 여러분도 앞으로 소설을 읽어나가시면서

작가가 하려는 말은 그만 찾으시고

나쁜 리뷰 달지 마시고

자기 감성을 들여다 보세요.

이 부분 내가 되게 좋아하네, 그래서 소설을 읽고나면

주제를 적어보자 이런 게 아니고 가장 좋았던 부분

가장 슬펐던 부분,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

그리고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거예요.

나는 왜 이 부분이 와닿았을까.

이런 걸 느낄 수 있으면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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