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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은 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가 (조우성-세바시-2013) 본문
대출 과정에서 은행이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화가 난 고객이
지난 5년 간 이 은행을 상대로 여섯 건의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그런데 이분의 소송 자체가 법 논리적으로는 옳지 않기 때문에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소송 과정에서 너무나 은행을
괴롭히는 거예요.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다양한 직원들을 증인으로 부르는 거예요.
판사님 앞에서 선서하고 증언하면 상당히 떨리거든요.
그 다음에 한 2년, 3년 전의 일을 물어본단 말이죠.
기억이 애매한 것들에 대해서 예스나 노 하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그러면 물어보고 제대로 답변 못 하거나 애매하게 답변하면
바로 그 은행원을 위증죄로 고발해버리는 거예요.
지난 5년동안 증인으로 불려나와 위증죄로 고발된 사람이
열댓명이에요. 물론 그 과정이 다 무혐의로 끝나기는 하지만 너무나 힘든거죠.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소송을 제기한 거예요.
소송하면서 선전포고를 한겁니다.
“이번에는 그 은행의 부행장을 포함한 네 명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
법무팀장이 와서 그러는 거예요.
“변호사님, 부행장님 증인으로 나가면 저 짤립니다.
어떻게든 이 소송에서 이 부행장님이 증인으로 안 나가게끔 해주세요.”
변호사로서 소송에서 이기는 건 할 수 있는데, 절차에서 아예
증인으로 못 나오게 막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 하필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알고보니 지난 5년 동안 싸우면서 선배들이 전부다 그 사람에게 데일 만큼
데인 거예요. 그래서 아무도 이 사건을 안 맡겠다고 저를 찍은 거예요.
어차피 피할 수가 없으니까 소장을 이렇게 봤습니다.
문득 원고 그분을 보니까 1946년생이에요.
46년생이 개띠인데, 아 이분이 우리 어머니랑 동갑이구나
왠지 묘한 동질감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오죽 답답하면 5년 째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니까
제 마음 한 켠에는 나라도 좀 이 분을 잘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가졌어요.
그러면서 1회 변론기에 법정을 나갔습니다.
법정에 가니까 저기 끝에 앉아계세요.
제가 가서 명함을 드리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제가 이 분의 무슨 은행 사건 그 은행 담당인 조우성 변호사입니다.”
그러니 그 분이 앉아서 명함을 탁 받더만 저를 째려보시는 거예요.
“흥, 이번엔 변호사를 바꿨네. 뭐 일부러 덩치 큰사람으로 바꿨나? 잘 해봅시다!”
정말 적의에 차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아휴, 저도 어차피 월급 받고 일하는데 저희 의뢰인이 그 은행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제가 사장님의 소장을 봤더니 그 동안 참 힘드셨겠습니다.”
그 얘기를 했어요. 절반은 진심이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저를 째려보고 있는 눈빛이 순간 흔들리는 걸 제가 느꼈어요.
뭐랄까 되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던 사람이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주는 듯한
그 말에 조금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인사를 하고
“이 법정이 싸움이 만만치 않으니까, 건강 살피십시오.”
이러면서 돌아왔어요. 그러고 이제 재판을 간단하게 진행을 했죠.
원래 1변론기에는 많이 안합니다.
그러고 이제 재판 마치면서 나오면서 제가
“살펴가십시오.” 이랬더니 저를 부르는 거예요.
“조변호사라고 했죠? 참 독특한 변호사네, 나 얘기좀 해도 돼요?”
“네 말씀하십시오.”
그러니까 저를 이제 법정 바깥에 코너에 딱 몰아놓고 이제 막 말씀을 하시는데
“그 은행 그 새끼들이..”
정말 울분에 차 있는거죠. 저는 가만히 막 들었어요.
“아 네, 네”
“은행 그 놈들이 그랬습니까! 고객인데..”
같이 맞장구를 치면서 들었죠.
30분 동안 계속 말씀을 하시는데 뭐랄까 댐이 물이 가득 찼다가
조금 균형이 생기면서 물이 빠져나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금씩 잦아드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분 얘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지금 은행과의 싸움 이 외에 자기 원래 동업자랑 법쟁 분쟁이 있는 거예요.
그건 잘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보니까. 그래서
“사장님 은행 사건은 제가 은행 쪽 일을 받고 있으니까 얘기는 못 하지만,
대박실업 그 사건은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혹시 관심 있으시면 아까 제 명함있잖아요
연락주세요 제가 봐드릴게요.”
그러니까 그 사장님이
“그래도 돼요?”
“안 될 거 뭐 있습니까, 오세요.” 제가 그랬어요.
한 이틀쯤 지났나 사무실로 전화가 왔어요.
“아 조변호사 내가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생각이 나서 전화했는데, 잠깐 가도 될까?”
“아 네, 오세요 오세요.”
그 분이 이제 음료수를 사가지고 오신 거예요.
아주 기묘한 장면이죠. 저랑 싸우고 있는 양반이 다른 사건 때문에 저한테 앉은거예요.
정리를 하고 코치도 해드려서 3시간 동안 회의를 했습니다.
“정말 고맙소”
이렇게 하고 갔어요. 그러고 나서 이틀 쯤 뒤에 그 은행에서 연락이 왔어요.
“조 변호사님, 큰일 났습니다.”
“왜요?”
“드디어 그 도라이가 증인 신청서를 냈습니다.”
저로서는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도와줬는데 자기 할 건 다하네.
그러고 이제 2차 변론기에 갔습니다. 딱 뵈니까 저기 앉아 계시더라고요.
잠깐 나오시라 그랬죠. 약간 제 눈을 피해요.
“하, 사장님 그 증인 신청 기어이 다 하셨대요.”
“그야, 뭐 소장 낼 때부터 내가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하 그 재판 그렇게 해봐야 안 된다니까 요 진짜..”
그러면서 제가 한 마디를 했어요.
"아 제가 그 은행한테 너무너무 쪼입니다. 직원이 했다면서 부행장을
증인으로 신청하니까 얼마나 겁을 먹고 저를 쪼우겠습니까. 힘듭니다."
그랬더니 그 사장님이 딱 그러시는 거예요.
“조변호사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리고 재판장에 딱 갔더니 그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이제 판사님이
"2000몇 년 원고 나오셨고 피고 나오셨고, 원고가 보니까
지금 증인 신청을 또 줄줄이 하셨네요. 뭐 어떻게 증인 신청 하십니까?"
그랬더니 그분이 그러는 거예요.
"증인 신청 철회하겠습니다. 네 명 다."
그 판사님이
"아 다 철회하는겁니까?"
"네 이미 앞선 사건에서 다루어진 내용이라 철회합니다."
"그래요! 재판은 그렇게 하는 겁니다! 쟁점 위주로!
좋으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나오는데 온 몸에 소름이 막 돋는 거예요.
나와서 정사장님께 90도 절을 드렸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조변호사, 나도 안다. 내가 지금 법정에 5년 째 다니고 있는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 사건 내가 진다. 근데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든 저 은행 저놈들을 내가 진짜 혼내주고 싶었다. 근데, 조변호사가
나한테 진짜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 힘든 부분도 해결해주고 그래서 내가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된다. 나 지금도 은행 생각하면 밉지만
내가 조변호사 생각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더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아주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낸 거죠. 결국 그 사건에서 그 분은 졌어요 다행히.
보통 이분이 지게되면 2심 3심까지 가서 괴롭히는데, 승복을 했습니다.
대신 동업자와의 사건에서는 5억을 청구했는데 일부 승소, 제가 계속 도와드려서
3억을 받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분 아들이 취직이 안 되고 있었거든요,
웹디자이너인데 제가 주위에 아는 사장 친구한테 전화를 했죠,
"어이 최사장"
"어 그래 조변호사"
"디자이너 필요 없나?"
"디자이너? 어 뭐 우리 사람은 다 있는데"
"아 여기 괜찮은 친구 있는데 일단 인턴 써보고 좋으면 계속 좀 하고 안 그러면 잘라도 된다."
"아이 뭐 조변호사 부탁이면 뭐 내가 해야지"
이래서 그 아들내미를 제가 인턴으로 집어 넣었어요.
한 달쯤 뒤에
"최사장 어떻노 그아들 그랬더니"
그 아들이 지 아부지를 닮아서 무지하게 집요한 거예요.
근데 디자이너한테 집요하는 그 미덕이란 말이죠.
"아 요즘 그런 친구 없는데 정말 훌륭한 친구다!"
그 정사장님 고향이 강원도입니다. 지금도 때가 되면 이분은 저한테
옥수수와 감자를 보내줍니다. 정말 적으로 만났지만 이렇게 좋은 사이가 됐죠.
제가 한 800건의 사건을 하면서 소송 물가액이 천 억이 넘는 사건들도 몇 건이나 있었습니다.
근데 제 기억에 가장 남는 사건은 바로 감히 이 사건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변호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경청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청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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