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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아르바이트 (2013) 본문
+2021
초등학교 5학년,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마트를 처음 가보았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신기했지만 가장 큰 이목을 끌었던 건 바로
삼겹살 청년이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씩씩한 청년의
우렁찬 목소리는 최소 성악과 3학년 쯤 돼 보였다.
"삼겹살 한 근에 만 원!"
짙은 눈썹 아래 떠오른 눈동자마저 여유로 가득해
괜시리 기가 죽었었다.
그때 함께 지켜보던 엄마가 내게 물었다.
"니도 나중에 저래 할 수 있겠나?"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나의 내성적인 성격에 대한 결핍을
낭비하듯 발산하는 그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들었지만
애초에 나와는 다른 도면으로 설계된 인간처럼
참 낯설고도 멀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약 9년,
스물 하나가 되던 해, 군 입대를 앞두고 집 근처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던 나는 얼떨결에
그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되었다.
삼겹살이 아닌 오렌지를 들고서...
처음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얌전하게 저울 달던 일주일이 지나자 실장님이 나를 불렀던 것이다.
"일로 와 봐"
"네!"
"여기 오렌지좀 팔아."
마트 입구 가장 좋은 자리에 드러누워 잘 잡혀가고 있는 이 오렌지를
더 어떻게 팔란 말인가..
"네?"
나는 되물었다.
그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비닐팩에 오렌지를 8개씩 담기 시작했다.
'아~ 묶음 판매를 하면 더 잘 팔리는구나.'
나도 열심히 따라 담기 시작했다.
두 세 봉지를 채웠을까, 그는 직원용 카트를 꺼내오더니
할인된 가격표를 붙여 마구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가장 좋은 한 가운데 끌고가서
태연하고도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오렌지 8개에 6000원!"
나는 농산 코너에서도 소리지르며 판매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해 가장 큰 충격의 1분이었다.
그야말로 눈 앞이 아찔했다.
9년 전의 삼겹살 청년과, 단호하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는 대답이
스쳐 지나가며, 내가 곧 저 자리에 서서 오렌지를 외칠 모습을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자 이제 팔아봐!"
잘 익은 주황색 바통은 내게로 넘어왔고
나는 오렌지보다 더 붉게 익은 얼굴을 식히며 크게 심호흡 했다.
"... ... 오렌지 사세요!!"
나의 세상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작음 틈새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이었다.
이후로 실장님은 내게 딸기와 시금치, 수박 등
어디서 구했을 지 모를 리어카까지 가져다 주시며
내 걸음마에 큰 기여를 해주셨다.
두 달 여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첫 발을 떼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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