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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자전 (이병철-1756)

2e2e 2024. 10. 29. 22:02

나는 어릴 때 출중하다는 말을 별로 듣지 못하였다.

다만 유별나게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옳지, 서울 가서 공부하자.'

 

 

 

매사에 성급하지 말아야 한다.

무리하게 사물을 처리하려 들면 안 된다.

 

 

 

선친은 나에게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처세훈(사필귀정-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감)과 함께 늘 강조한 것은

거짓과 꾸밈은 개인에게나 국가, 사회에도 대환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된다.

 

 

 

노怒할 줄 모르는 자는 어리석다.

그러나 노할 줄 알면서 능히 참는 자는 현명하다고 한다.

 

 

 

사람은 일생을 통해 몇 번은 전기(전환점을 이루는 기회나 고비)를 맞는다.

스스로 그것을 만드는 때도 있지만 느닷없이 찾아올 때도 있다.

 

 

 

사업이란 무엇인가.

한 개인이 제아무리 부유해도

사회 전체가 빈곤하면 그 개인의 행복은 보장받지 못한다.

 

 

 

"3리가 있으면, 반드시 3해가 있다."

"교만한 자 치고 망하지 않은 자 없다."

 

 

 

"나는 항상 청년의 실패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청년의 실패야말로 그 자신의 성공의 척도다.

그는 실패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대처했는가,

낙담했는가, 물러섰는가, 아니면 더욱 용기를 북돋아 전진했는가.

이것으로 그의 생애는 결정되는 것이다." - 몰트케

 

 

 

여행의 목적은 무슨 사업을 어떤 규모로 어떻게 하느냐를 탐색하는 데 있었다.

 

 

 

의인물용, 용인물의

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고용 말라.

의심하면서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그리고 고용된 사람도 결코 제 역량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을 채용할 때는 신중을 기하라.

그리고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

 

 

 

누구나 귀에 거슬리는 말은 듣기 싫어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삼가게 된다.

소원해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참다운 벗이 못 된다.

서슴지 않는 벗이 참된 벗이다.

 

 

 

한국인이 둘 모이면 정당이 셋 생긴다

우리 국민이 정치를 좋아한다는 표현이지만,

말하기를 좋아하고 자칫하면 자제력을 잃고 협조를 깨기 쉬운

일면을 경계하는 자성의 말이기도 하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존이 국가를 떠나서 있을 수 없듯이,

사업 또한 마친가지다. 사업을 통해서 국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그것 없이는 나의 인생은 뜻이 없다.

 

 

 

시기사람, 거기에 자금의 3박자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성공을 기약할 수 없다.

 

 

 

순경은 벗을 만들고, 역경은 벗을 시험한다.

 

 

 

인적 자원 외에는 자원다운 자원을 갖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원자재를 수입하여 그것을 다양한 상품으로 가공하여 수출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이 사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수한 기술과 가공, 생산시설을 갖춘 제조업이야말로

불가결의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책임을 지고 최종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은 최고 책임자의 임무다.

 

 

 

"팔지요. 다만 사람과 사업 취지와 용도에 반했기 때문이지,

돈 욕심이 나서 파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아주시오."

-이동인

 

 

 

예술가의 사명감이나 정진에는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으면서,

기업가에 대한 사회의 눈은 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다.

인간이 무한탐구, 무한정진을 추구하는데는 기업가도 예술가와 다를 바가 없다.

 

 

 

어떤 사업이건 실패의 위험은 뒤따른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실패의 여지가 있다는 불안을 안고 착수하는 것이다.

100%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착수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에 불안을 품은 채 착수하면 주저하여 전력투구를 못하게 된다.

배수진을 치고 백척간두에서 단호히 결행해도 예기치 못한 장애에 부딪치거늘,

하물며 출발부터 의심하고 망설이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외국인 기술자들 입에서 이제 더이상 지도할 것이 없다는 말이 나왔지만,

고급기술자를 계속 초빙하여 자문을 받도록 했다.

 

 

 

솔직히 말해서 국내에서의 소성에 만족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국내에서 제일이 된다든지, 국내 경쟁에서 이긴다든지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본을 축척하여 차례차례 새로운 기업을 개척함으로써, 선진 외국과 당당히 맞서서 이긴다.

그것이 내가 나아갈 길이다." 이렇게 스스로 다짐했다.

 

 

 

절망은 어리석은 자의 결론이라고 한다.

 

 

 

지금 위정 당국이 할 일은, 먼저 국민들에게

우리는 왜 빈곤하고 얼마나 빈곤한가를 통계수치를 들어 사실 그대로 알려주어야 하며,

그 다음에는 우리가 도달하여야 할 목표를 명시해 주어야 한다.

 

 

 

'이 정도의 장애에 굴복할 수는 없다. 누가 이기나 어디 두고 보자.'

 

 

 

천리의 둑도 개미구멍 하나로 무너진다.

 

 

 

노벨상의 경우는 뉴욕의 월가 같은 데서 주식투자도 하고,

때로는 투기까지 해서 기금을 증식시켜, 견고한 기금 위에서

상의 권위나 신뢰를 유지해 가고 있다.

 

 

 

국가 백년대계에 있어서 인재육성의 중요성은 그것을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는 않는다.

고래로 한 나라의 성장은 청소년에 달려 있다고도 했다.

 

 

 

나는 생애에서 단 한 번 정치가가 되려고 생각한 적이 있다.

4.19와 5.16혁명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두 차례의 변혁으로 중첩된 정치, 사회의 혼미는, 경제에 파국적이라고 할 만한 영향을 미쳤고

기업활동을 위축시켰다. 그것은 국가, 민족의 백년대계에 치명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1년여를 두고 숙려한 끝에 정치가의 길은 단념했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잘 살게 하는 데 있다. 그런 올바른 정치를 권장하고

나쁜 정치를 못하도록 하며, 정치보다도 더 강한 힘으로 사회의 조화와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한 끝에 결국 종합 매스컴 창설을 결심했다.

'마상에서 천하를 잡을 수는 있으나, 마상에서 천하를 다스리지는 못한다'는 명언이 있다.

그러나 마상의 총검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펜, 즉 언론도 잘못 사용하면 흉기가 된다.

언론은 구사하기에 따라 정의가 되기도 하고, 불의가 되기도 한다. 펜이란, 언론이란,

이 양면의 성격과 기능을 지닌 '양날의 검'인 것이다. 이것을 충분히 인식한 바탕 위에서

자율의 억제가 통하고 균형감각이 잡힌 힘 있는 종합 매스컴을 만들어 육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최고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최고의 시설

대우

인재

이 4가지 최고를 갖춘 신문사로 <중앙일보>를 키우고 싶었다.

 

 

 

인간의 죽음은 흔히 너무 이르든가 늦든가 한다.

그러므로 죽음의 길은 언젠가는 가야 할 줄 알면서도

미련이나 슬픔이나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아무튼 위암 수술은 나에게 생과 사를 직시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이제까지 내 모든 사업을 관리해온 방식 그대로

내 건강도 한번 관리해 보리라고 작정했다.

 

 

 

양질의 제품을 얼마나 저렴하게 사회에 공급하느냐,

바로 이것이 기업 사명의 전부이고 그 존재가치이기도 하다.

 

 

 

사업에 착수하는 용기와 함께 물러서는 용기도 필요하다.

 

 

 

생명보험은 소득의 2차 분배기능을 갖고 있으며,

가입자는 저축과 유고시에 대비할 수가 있다.

한편 국가 경제는 경제개발의 투자 재원을 생보에서 조달할 수가 있다.

생명보험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업종이다.

손해보험, 생명보험 할 것 없이 보험업의 수준은 경제발전의 단계에 비례한다.

 

 

 

호텔은 일종의 예술작품이며 문화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큰 이익이 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호텔신라를 경영해 보고 알았다.

그러나 호텔신라가 '한국의 얼굴'로서 훌륭히 민간외교의 일익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전종업원이 인식하고 있어 즐거움과 용기를 더해주고 있다.

 

 

 

기업의 경영에는 항상 원칙이 있고, 철학이 있고,

그 원칙이나 철학에 바탕을 둔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기업 경영의 근간은 처음부터 책임경영제에 있었다.

삼성물산을 핵으로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산하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비서실을 두어,

그룹 전체의 통괄을 비서실에 일임 해왔다. 기획, 조사, 인사, 재무의 조정, 감사 등

오늘 날의 삼성 비서실의 기능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자리 잡혀온 삼성 고유의 것이다.

 

 

 

각사 사장에게 회사 경영을 분담시키고,

비서실이 그룹의 중추로서 기획, 조정을 하는 운영체제이기 때문에,

나는 경영, 운영의 원칙과 인사의 대본만을 맡아왔다.

삼성이라는 기업그룹의 창업이념, 그에 근거한 기업경영의 원칙,

이것을 이어갈 인재의 발굴, 이것만을 맡아왔다.

 

 

 

나는 경상적인 사업의 사소한 일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지도 못한다.

다만 '의인물용, 용인물의'로 유위한 인재를 찾아서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겨왔을 따름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외부 전문가에 의한 그룹 각사와 경영진단을 정례적으로 실시하여,

경영, 조직의 합리화를 계속 추진시켜왔다.

한편 장, 단기 경영계획 제도를 도입하여,

각 기업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게 하고

매월 계획대비 실적을 평가함으로써,

기업체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 유효적절한 대응, 노력을 경주할 수 있도록 해왔다.

오늘날에는 상식화된 경영수법이지만, 그때로서는 삼성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었다.

 

 



사원출자제, 공개채용 사원모집, 사원연수제, 인사고과제, 어학검정고시제 등

역시 인사정책, 인사제도의 분야에서 처음 시행했었다.

 

 

 

사원공모, 사원연수 등은 이제는 거의 일반화가 되었지만,

삼성이 공채제와 연수제를 도입했던 1950년대 중반에는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경제, 사회가 아직 성숙되지 못했고, 사기업이 공채를 통하여 제1급 인재를 구할 만큼

기업 자체가 성장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공채를 통해서 일류학교의 수재를 모아들일 수 있었고,

그 결과 오늘의 삼성이 있게 되었다.

 

 

 

인재제일나의 신조이며, 인사정책은 언제나 삼성의 경영정책 중에서

최우선의 위치를 차지한다. 사원교육을 중시하고, 용인자연농원 안에 1천 명을 일시에

수용할 수 있는 세계적인 대형 연수시설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나의 신념은 기업이 없이는 나라도 없고

또한 나라 없이는 기업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사업의 진출은 그러한 생각의 한 증좌이다.

막대한 설비투자가 들뿐더러, 기술혁신의 주기가 매우 짧은 반도체 생산에는

많은 위험이 뒤따른다. 그러나 그 위험을 뛰어넘어 성공을 쟁취해야만

삼성의 내일은 열린다고 나는 확신한다.

 

 

 

기업은 영원한가. 이에 대한 답은 물론 '노'이다.

영원은커녕 짧으면 10년, 20년, 길어서 40년, 50년의 사이클로 소장하고 있다.

영고성쇠를 거듭하는 기업의 수명은 인간의 그것보다도 훨씬 짧고 덧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생애 중에서 기업경영에 바칠 수 있는 경영수명도 30-40년에 불과하다.

 

<일본경제신문>의 자매지 <닛케이비즈니스>가 실시한

'일본 톱 기업 100사의 과거 100년간의 성쇠 조사' (1983년 9월 19일호)

이 조사는 1896년~1982년 10년 간격으로 9기간에 걸쳐 매출액 기준 상위 100사의 변천을 살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9기간 동안 연속하여 상위 100사에 들어있는 회사는 오우지제지와 가네보방적 2개 사뿐이다.

나머지 98개 사는 도산·흡수합병·변신 또는 업적부진 등의 이유 때문에 100사 랭킹에서 탈락한 것이다.

일단 100사 안에 든 기업은 평균하여 어느 정도의 기간 랭킹에 머무를 수 있었는가, 겨우 30년에 불과했다.

 

 

 

1896년의 제1기 100사 랭킹에서 상위 10사에 들었던 기업 중 9개 사가,

회사설립 후 평균 27년 후에는 흡수합병이나 도산으로 그 사명이 소멸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

 

 

 

한 나라의 산업구조는 경제 발전단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노동집약에서 자본집약, 경공업에서 중공업, 소재에서 가공조립으로,

산업과 기업은 그 구성을 바꾸어간다.

근년에는 중후장대의 중화학 구조에서 경박단소의 첨단기술산업으로 주역이 바뀌고 있다.

이러한 구조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낙후되고 만다.

종래의 구조에 매달리는 일업단품의 기업으로는 연명이 힘들다.

다각화를 위하여 노력이 경주 안 될 수 없다.

 

 

 

단일 주업종의 비율이 70%를 넘는 회사는 오늘의 기업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기업의 전신이나 변신은 비단 일본에 한한 것이 아니라, 구미 선진국의 기업사에서도

그 예를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기술의 혁신과 그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에 기업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이 구조혁신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의 자질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평소 어떠한 사람이 사장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온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덕망을 갖춘 훌륭한 인격자이어야 하고

둘째, 탁월한 지도력을 구비하고

셋째, 신망을 받는 인물이어야 하며

넷째, 창조성이 풍부해야 하고

다섯째, 분명한 판단력을 갖추고

여섯째, 추진력이 있어야 하고

끝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세상엔 이런 조건을 모두 겸비한 인물이 드물다.

따라서 조직력으로 다양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되어

서로 보완적으로 협력하면 능히 그런 경영체를 만들 수 있다.

 

 

 

나는 거듭 강조하고 싶다.

기업은 결코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변화에의 도전을 게을리 하면 기업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단 쇠퇴하기 시작하면 재건하는 것은 지난하다.

 

 

 

후계자의 선정에는 덕망과 관리 능력이 기준이 안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순히 재산을 상속하는 것보다는 기업의 구심점으로서

그 운영을 지휘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생스러운 기업경영의 일을 자손들한테까지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업 탓으로 숱한 파란과 곡절을 겪으면서 갖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삼성의 사원은 50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사람들로서 거의가 우등생들이다.

그러나 학교성적이 좋다고 해서 꼭 훌륭한 인재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학교교육은 사회진출을 위한 기초교육에 힘써야 하고, 사회나 기업에서는

인격형성 및 기능향상, 경영능력 배양을 위한 교육을 꾸준히 시켜야 한다.

따라서 나는 기업경영의 80%를 인재양성에 쏟아왔고, 인력에 대해서만은

아낌없는 투자를 해오고 있다.

그래도 1~2년쯤 지나면 신입사원 중 5~6%가 탈락한다.

그리고 전체의 30%는 아주 우수하다. 아무리 환경이 나빠도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차츰 인격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장을 계속하여 임원도 되고 사장도 된다.

 

 

 

회사 내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 문제점을 과감히 제거하고

용서하지 않는 경영자를 흔히 냉혹한 사람이라고 평하지만,

정작 냉혹한 사람은 잘못을 덮어두고 미온적인 경영으로 회사와 본인의 장래를 망치고

결국 사회를 혼란케 하는 경영자일 것이다.

 

 

 

사람을 아는 데는 그 사람의 취미만큼 확실한 교재도 없다.

인간의 기량은 여유에서 생긴다고 한다.

여유가 없는 인간은 하찮은 구실이나 타산에 치우쳐 어딘지 모르게 성격도 편협하다.

취미는 이 여유와도 인연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시간낭비를 가장 싫어한다.

매일의 일과는 빈틈없이 시간배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잡년이 끼어들 겨를이 없다.

 

 

 

돈만을 벌자는 동기만으로는 결코 명품이 나올 수 없다.

헤드의 나무를 찾는 것에서 시작하여 최고 최선의 것을 추구하여

마지않는 인간의 창조의욕과 깊은 정신의 결정이 명품을 낳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골프채에 그치지 않고 사업을 포함한 모든 인간활동에도 통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소설에서 사서에 이르기까지 다독이라기보다는 난독하는 편이었다.

 

 

 

가장 감명을 받은 책 혹은 좌우에 두는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 <논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바로 이 <논어>이다.

<논어>에는 내적 규범이 담겨 있다. 간결한 말 속에 사상과 체험이 응축되어 있어,

인간이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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