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넨도의 문제해결연구소 (사토 오오키-2016) 본문
제게 있어 '디자인'이란 일상의 사소한 사건을 놓치지 않고
거기서부터 무언가의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작업입니다.
디자인 사무실을 경영하다 보면 늘 따라붙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디자인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돈이 되지 않는다'는 딜레마죠.
'클라이언트의 지갑이 작으니 그 수준만큼만 노력한다.'
디자이너가 이런 생각이라면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지갑 자체를 좀 더 크게 만들어 줄 파이팅 넘치는 디자인.
이런 디자인이 앞으로의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디자인이라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이란 '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것'과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이상적인 감각은 '당연히 거기 있어야 하는데 웬일인지
아직까지는 없었던 것'을 '보충한다'는 정도의 감각입니다.
상품 A와 B가 있으니 '자, C로 승부를 보자'가 아니라,
A와 B 사이에 어느 정도의 틈이 있는지, 그 틈은 어느 정도 깊은지 생각해보는 거죠.
시장에 나온 상품과 소비자가 진짜 원하는 것 사이에도 틈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최대한 살펴보자는 거죠.
술과 디자인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파티 문화가 유럽 디자인계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 그 큰 요인이라 할 수 있죠.
디자인 관계자는 파티를 통해 자기를 알리고 인맥을 넓히고 정보를 교환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고
진짜 목적은 '숨어 있는 요구'를 끌어내는 것이라야 합니다.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숨어 있는 필요를 끌어내 문제의 핵심을 찾는 일입니다.
작은 착상은 옆 사람의 머릿속에서 성장한다.
뭔가 떠올랐다면 일단 먼저 말로 해보는 게 좋습니다.
그걸 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착상을 발전시켜 줄 수도 있기 때문이죠.
별것 아니던 '그것'이 내가 모르던 '이것'과
연결된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으니까요.
디자인에서 제일 큰 문제는 지나치게 참신하기만 해서는
소비자에게 그 디자인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디자인을 판단하기 이전에 벌써 뇌 속에서 탈락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기억을 의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것, 느껴본 적 있는 것.
그런 디자인이 뇌에 더 친절한 디자인인거죠.
기획을 진행해가는 데 있어 가장 큰 리스크는
프로젝트 멤버가 주제에 대한 첫 느낌을 점차 잊어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소비자의 감각에서부터 점차 동떨어지게 되죠.
수많은 디자인이 한 자리에 모이는 박람회 같은 곳에서는
인상에 남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잠깐 좋은 평가를 받아도 다음 순간 곧바로 잊히기 때문이죠.
아름답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는 디자인이 되고 마는 겁니다.
아이디어가 기억에 남는 조건은 뭘까요?
역설적이지만 아이디어 안에 있는 결점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그 주요 조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요소를 함께 전달하면서
전체로서는 긍정적인 것으로 전달되게끔 하는 방식이죠.
향수는 좋은 향만으로 조합해서는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 정도는 굉장히 나쁜 냄새를 넣어야 매력적인 향이 된다고들 하죠.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점이 없는 아이디어는 애착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기억에 남지도 않죠.
상품에서 중요한 건 역시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캐릭터에는 다들 결점이 있죠.
'도라에몽'은 쥐를 무서워하고 꼬리를 잡아당기면 전원이 꺼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이 있기에 스토리가 탄생됩니다.
감정이입도 가능해지고 말이죠.
저는 뭐가 됐든 '일단 해본다'는 노선을 취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런 문제와는 별도로,
반드시 그 안에 새로운 발견이 있기 때문이죠.
세계 일류 디자이너들을 만나며 공통적으로 받은 인상은,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꽤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기 영역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영역을 사수하는 것이 일류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뭐가 문제인지, 혹은 내가 잘하는 영역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면
본인에게 들어오는 버거운 의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과부하가 걸릴 때까지 해보는 게 정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외의 일류 디자이너들도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파악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난제들과 마주했을 테니까요.
버거운 일을 맡아 진행해가다 보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던 것'이
잘못된 믿음이었다는 사실이죠.
그것이 '버겁다'고 생각되던 바로 그때
내 마음대로 결정해버린 것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내 능력 밖의 일을 '누군가의 기대'라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하여 그 기대를 1밀리미터라도 더 충족시키는 것에 집중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내 앞에 당면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드디어 왔구나!' 이렇게 생각되는 기회는 의외로 기회가 아닙니다.
'귀찮기만 하고 큰 수확은 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되는 쪽의 선택에 진정한 기회가 있고 큰 수확이 있습니다.
기회는 교묘히 숨겨져 있죠.
귀찮다고 생각되는 일일수록 의식적으로라도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기회도 찾아오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다른 걸 갖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걸 가지면서 느끼는 '안도감'을
전부 저버릴 수 없는 생물이기도 합니다.
(...) '과거에 경험한 적 있는' 안도감을 자연스레 풍기도록 하는 것이
디자인의 요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가치를 구현하려는 상품일수록
익숙함을 느끼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완결된 것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고민하다 보면
선택할 수 있는 게 의외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이런 경우 '한 발 물러서기'를 통해 아이디어를 부드럽게 만들어봅니다.
딱딱하게 굳은 캐릭터를 내려놓아 보는 거죠.
곰돌이 푸라고 느껴지는 최대한의 마지노선까지 추상화하고
간략화하는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의 양도 늘어나게 됩니다.
결단이 헷갈린다면 '제일 처음 맞다고 생각한 것'이나
'난이도가 높은 것'을 고르면 대부분 정답입니다.
디자이너는 누군가가 본 적 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도,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을 만드는 사람도 아닌,
누구나 본 적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것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고객이나 소비자뿐만 아니라 시장 전체 혹은 사회가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안도감의 영역'이란 게 있죠.
그 영역에 아슬아슬하게 접하고 있는 아이디어야말로
진짜 '정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안과 안심의 틈새가 가장 두근거리는 지점이니까요.
'이것은 펜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그리트가 말하는 '배반'입니다.
펜을 두고 '펜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어?'라는 의문이 드는 거죠.
중요한 것은 '어?'라는 상태를 내 스스로 반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어떤 사물을 '엄청나게 동떨어진 것'으로 단언하는 방법을 자주 씁니다.
'이것은 펜이 아니라 마우스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기본적으로 세상에는 '당연한 것',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느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조연이 주연을 '집어삼켜 버리는'
정반대의 균형이 연출되어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친구가 '뉴튼'이라는 애플 초기의 PDA를 가지고 있던 때에는
'흑백이다', '너무 크다'며 돌을 맞았고
'애플 아이맥 G4 큐브'를 샀을 때는 냉각 기능이 너무 떨어진 나머지
'새로운 난방 기구를 산 거냐'고 놀림 받고는 했쬬.
'아이북'을 가지고 다니면 '이두박근 키울 일 있냐'는 놀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완전한 독자노선이야말로 애플의 매력이었습니다.
여당이 된 지금도 애플에게 기대하는 바는 마찬가지죠.
물론 상품의 품질은 높지만 디자인은 사실 그렇게 특출하다고 볼 수 있는 컬리티는 아닙니다.
사내 디자이너의 레벨만 봐도 국내 대형 가전 브랜드 쪽이 훨씬 더 위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이 애플에게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리게 해 준 걸까요?
그것은 바로 '한쪽으로 치우친 콘셉트', '효율성 낮은 제조 방식'을 고수하면서
태어난 '차별화'입니다. 국내 브랜드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부분이죠.
가격 대비 성능만을 비교하면 타사 제품이 머리 하나 정도는 더 뛰어납니다.
그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애플을 사게 되는 건,
그만큼의 '광기'가 제품 개발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마그네슘 덩어리를 깎아내 본체 프레임을 만든다거나 알루미늄 압출 성형으로
아이팟 미니를 만든다거나 완전히 경면 처리 되어 있는 아이팟의 뒷면도
'미쳐 있기에 가능한' 제조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해버리기 때문에
애플 유저는 가슴이 뛸 수 밖에 없는 거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다르빗슈 유 투수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2004년 고시엔 3회전, 악천후와 팀의 실수가 겹쳐 패한 경기.
그 경기의 마지막 타자가 다르빗슈 선수였고 그가 삼진 아웃을 당하는 것으로
경기는 끝나고 말았죠.
하지만 마지막에 그가 보인 얼굴은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소름 돋을 정도로 인상적이었죠.
현재 일본 야구계의 에이스가 된 다나카 마사히로 투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와세다실업고등학교와의 고시엔 결승전, 최후의 타석에 선 다나카 선수가
삼진아웃을 당하며 경기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나카 선수는 눈물을 보이기는커녕 넉살 좋게 미소까지 지어보였죠.
약간 거친 일반화이긴 하지만 고교 야구 시절,
져도 울지 않던 선수가 대성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팀의 화합이나 프로세스를 너무 중시하면 본래의 목적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 그럴 때 필요해지는 것이 스트라이커와 닮은 '오만방자함'입니다.
자기 눈에만 보이는 '슛 코스'가 있다면 팀의 화합을 다소 흐트러트리더라도
골을 몰고 달려가야 되는 거죠. 상황에 따라서는 디자이너의 '독단'이
클라이언트의 등을 밀어 프로젝트의 추진력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 즉 유치원생이든 평생 살림만 한 어머니든
누구든 상관없이, 전화로 상품 콘셉트를 전했을 때 그 콘셉트의 재미가 전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이죠.
일본인과 서양인 사이에는 편안함을 느끼는 그런 묘한 지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의 거리에는 반드시 '중심'이 있고 대부분의 경우 거리의 중심에
'광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 반대로 일본인은 '광장'을 그다지 능숙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민족입니다.
굳이 구분한다면 광장보다는 '골목'의 민족이라 할 수 있죠.
(...) 전철만 봐도 일본과 서양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일본사람은 텅텅 빈 전철에 올라타도 어쩐지 좌석 끄트머리 쪽에 앉게 됩니다.
서로 앞다투어 끄트머리 자리를 차지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까닭은
일본인에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간이 '구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같은 경우, 좌석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는 사람을 더 많이 보게 되니까요.
좋아하는 광고 중에 벤츠 '스마트 포투' 자동차 광고가 있습니다.
도시 공간을 시원하게 달리는 콤팩트한 2인용 자동차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벤츠가 선택한 공간은 사륜 구동 자동차 광고에나 등장할법한 오프로드 공간입니다.
질퍽거리는 비포장 길, 물웅덩이에 도전했다가 모조리 실패하고 만다는 내용이죠.
결점을 유머와 섞어 드러내면서 상품 특성의 어필에 성공한 광고입니다.
일상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레젠테이션 때 장점만 나열하면 오히려 경계심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한 장점과 같은 분량의 결점을 솔직히 전달하고자 신경 쓰고 있죠.
이런 것들이 묵묵히 신뢰 관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모든 걸 오픈하면 클라이언트로부터 신뢰받게 됩니다.
또한 정확한 정보로 클라이언트의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죠.
회전 초밥 체인 '아킨도스시로'가 넨도를 선택한 까닭은
프레젠테이션에서 부정적인 부분에 대해 언급한 팀이 넨도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라면 마지막까지 공정한 의견을 내놓을 것 같다.'
아킨도스시로의 사장이 이런 평가를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죠.
디자인의 목적은 단순히 무언가를 멋있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인간에 대해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죠.
어려운 것을 알기 쉽게, 논리적인 것을 직감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게. 이것이 디자인의 본질입니다.
정답은 가장 귀찮은 선택지 안에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헷갈린다면 그중 가장 귀찮고 번거로운 것을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가장 번거롭던 선택지가 결국엔
정답에 가장 근접한 길일 때도 있죠.
그러므로 역풍이 가장 강한 루트를 선택하는 것은
커다란 수확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귀찮고 성가신 선택지가 있다면 그것이 기회입니다.
한 발 더 가까이 정답에 다가가는 것은 물론,
프로젝트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심지어 일도 재밌어지다가
결국엔 성장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유럽에서 가구 디자인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자택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문화 때문입니다.
디자인 오피스 넨도는 불경기 속에서 태어나
호경기라는 것을 겪어 보지 못한 조직입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부족한 예산과 제약 속에서 아이디어로 승부해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불경기라 해도 결국은 '지금 있는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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