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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2015)

2e2e 2022. 8. 15. 16:31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도 할 수 있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투사가 되기 싫으면 연기자라도 되어야 하는 거다.

 

 

 

타인들이 원하는 연기를 잠시 해주면

내 자유가 더 확보된다는 걸 일찍 영악하게 깨우친 거다.

 

 

 

아무리 객관적인 척 논리를 펴도

결국 인간이란 자신의 선호, 자기가 살아온 방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우리 평범한 인간들이 어찌 이웃을 '사랑'하기까지 하겠는가.

그저 큰 피해 없으면 참아주기라도 하자는 것이다.

 

 

 

"제발 우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요. 어차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발붙이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서로 노력을 해나가자고요."

평생 청각 장애인으로 살아야 될 정도로 백인 경관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한 로드니 킹이 그로 인한 LA 폭동 때

평화를 호소하며 했던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은 안고 살고 있더라는 거다.

다른 것은 몰라도 고통만큼은 평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 과잉 기대도 말고

과장된 절망도 치우고 서로 그나마 예쁜 구석 찾아가며 참고 살자 싶다.

큰 기대 않고 보면 예쁜 구석도 꽤 있다. 이건 결국 자기변명이다.

그래야 남들이 나도 참아줄 테니.

 

 

 

가끔 이런 원래의 성향을 잊고 오버할 때가 있다.

내가 마치 대단한 존재라도 된 양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세상의 진리를 깨달은 양 개똥철학을 늘어놓기도 한다.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심에 자신을 분칠하고 포장하기도 한다.

 

 

 

세상은 완고하고 인간은 제각기 어리석다.

 

 

 

인간에게 있어 타인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최고의 유용한 자원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집단, 공동체가 개인에 우선하는 숭고한 유기체고

개인은 이를 위해 기쁘게 헌신하고 희생해야 할 나사못인 것이 아니다.

 

 

 

집단 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무려 '인간 혐오'라는 말까지 써가면서 고백한 것들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개인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과 억압이다.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롤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학벌, 직장, 직위, 사는 동네, 차종, 애들 성적......

삶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남들 눈에 띄는 외관적 지표로

일렬 줄 세우기를 하는 수직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상 한 명도 있을 수 없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과잠(대학교 학과 야구 점퍼)' 문화도

정밀해진 대학별 과별 서열의 수직선 내에

자신이 어디쯤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풍조다.

 

 

 

시대착오적인 군대 문화가 대학사회에 만연하는 이유도

기성사회의 집단주의 문화를 흉내내고

서열주의를 내면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스티브 잡스가 매혹적이라 하여

그의 괴팍함과 못된 점조차 찬양할 필요는 없다.

훌륭한 점과 비판받아야 할 점은 냉정하게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대체로 성공에는 재능과 노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사회에는 그저 우연히 부모 잘 만나서

과분한 기회를 누리며 사는 이들도 많다.

 

 

 

(*서은국 교수 - 미국에서 오래 연구한 심리학자로,

인간이 느끼는 행복에 관하여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서교수가 이야기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행복의 메커니즘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이다.

 

 

 

백억 원의 복권 당첨자 집단에 대한 추적연구 결과

불과 일 년 뒤에 이들의 행복감은 주변 이웃 수준으로 복귀했다.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행복 전략에 있어 큰 것 한 방보다

다양하고 자잘한 즐거움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심리학의 연구성과다.

 

 

 

연봉 상승에 따라 대체적으로 행복도도 상승하지만

문화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인 7만 5000불이 넘어서면

행복에 영향이 없고 오히려 물질주의 성향 증가

행복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2022년 8월15일 기준 75,000불 : 약 9,700만원)

 

 

 

돈을 벌든 높은 자리에 오르든 박사가 되든

그걸 같이 기뻐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해 있을 때

뇌의 행복 중추에 불이 번쩍번쩍 들어오는 것이지

모두가 슬슬 피하고 흉을 보는데 혼자 방에 돈다발 쌓아놓거나

임명장 걸어놓고 쳐다본다고 행복감이 넘쳐날 리 없다.

 

 

 

어차피 경쟁할 수밖에 없다면 전장을 무수히 쪼개어

승자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낫다. 예전 국민학교 졸업식에서는

전교 일등만 몇 번씩 단상에 올라가 온갖 상을 독식했지만,

요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는 책읽기상, 친구돕기상, 달리기상,

오만 이름의 상장을 모두게에 인심 좋게 나눠준다.

어느 쪽이 더 다수가 행복한 졸업식일까.

 

 

 

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심리학계 연구 결과

행복감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성은 개인주의고,

북미나 유럽 국가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는

높은 소득보다 개인주의적 문화 때문으로 본다.

 

 

 

타고나길 남드로가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 중독증 환자들이야말로 행복해지기 쉬운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세상이 다 속독법학원 같을 때가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인간은 자기 경험의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것.

 

 

 

서구 민주주의는 인간성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을 기본 전제로 하고,

권력자를 철저히 불신해 권력을 분리하여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사고방식 말이다.

 

 

 

아직도 이 사회의 아주 많은 이들에게

법이란 미지의 공포에 가깝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은 생전 내게 법을 아는 친구가 한 명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얘기하곤 했다.

 

 

 

우리의 본성은 전자발찌를 채워야 할 상습 전과자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에게 '선비질'을 해야 한다.

 

 

 

나에게 한사코 권하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남들이 한사코 감추고 있는 게 세상의 비정한 이치다.

 

 

 

인도의 한 왕이 숲으로 사냥을 갔다가

예쁜 아기 사슴을 발견하고는 활을 쏴 명중시켰다.

그런데 활을 맞지도 않은 어미 사슴이 죽은 아기 사슴 옆에서

슬피 울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왕이 어미 사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조각조각 찢겨 있었다.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 가능한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불가해하고, 모순 덩어리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 관찰의 주된 재료는 작가 자신의 내면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을 스쳐갔던 온갖 미묘한 감정과 충동들.

질투, 선망, 욕정, 열등감, 우월감, 증오, 살의......

자신을 주어로 하여 털어놓기는 어려운 날것의

내면적 충동들을 재료로 상상력을 가미하고 증폭, 변형하여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창조해낸다.

 

 

 

대기업 임원과 중간간부들을 대상으로

<미생> 캐릭터 중 부하직원으로 선호하는 사람을

묻는 기사를 봤다. 대다수가 파마머리 김대리를 꼽았다.

무난하고 원만하기 때문이란다.

장그래같이 판을 흔드는 아이디어를

불쑥 내곤 하는 부하는 부담스럽단다.

 

 

 

판을 흔드는 아이디어를 불쑥 내는 부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관리자들의 할 일이다.

그게 부담스러운 관리자는 무능한 거니까 그쪽이 나가야 하고.

학벌 타령은 이 글로벌 경쟁 시대에 우리 기업이

아직 배가 덜 고프다는 증거다.

 

 

 

경영자야말로 능력이 있어야 한다.

1.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

2. 그 인재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는

    조직 내 관료주의의 벽을 부수는 능력

3. 사람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는 능력

 

 

 

국밥집조차 주인이 가게에 늘 나와 있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의 맛은 천양지차다.

 

 

 

"가슴속에 칼을 품고 계시니

스스로 그 칼에 찔려 다치시는 겁니다."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감히 대단한 명답을 제시해 분쟁을 해결했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었다.

 

 

 

능력 있는 이들을 엄선한 이상

이후 업무 처리에는 최대한의 독자적 권한을 부여한 후

간섭하지 않았다. 과연 놀라웠다.

 

 

 

인상이나 말투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뛰어난 위원들 모두가 예외 없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다.

먼저, 분쟁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다.

당사자들이 겉으로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과

속으로 아쉬워하고 있는 것은 다를 때가 많다.

체면상 또는 전략적 허세(블러핑)로 목청을 높이고 있을 때

슬쩍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제 3의 대안을 제시하면

못 이기는 척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심리학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끌린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동료 인간이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라는 점은 미래에도 유지될 것이다.

 

 

 

아무리 기계가 발전해도 인간은 대체불가능한 자원일 수 있다.

섹스 로봇, 친구 로봇같이 최대한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만들어

뇌를 속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보완재 정도면 몰라도

인간관계를 전면적으로 로봇으로 대체할 경제적 필요성이 있지는 않을 거다.

 

 

 

그 시대에도 역시 빈부격차는 있을 것이고,

폭력과 탐욕, 부조리도 있을 것이며,

사람들은 당대에 누리고 있는 것들에

금세 적응하여 그 시대 나름의 부정의, 불평등과 결핍에 대해

분노하고 절망할 거다. 지금 우리처럼 말이다.

유토피아는 믿지 않는다.

 

 

 

국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대체로 다수 의견은 보다 많은 복지 혜택은 원하되

세금은 더 내길 원치 않고,

어떤 문제든 정부가 나서서 강력히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식이다.

 

 

 

악마와 싸우는 건 차라리 쉽다.

선량한 사람들의 절실한 희망과 맞서야 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것이 거짓 희망일지라도 말이다.

 

 

 

사람들의 속마음은 내가 나쁜 짓을 해도,

구린 데가 있어도 끝까지 나를 배신하지 않는

공범을 원하는 거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나.

뭐 대단한 정의의 사자랍시고

입바른 소리를 하고 그래.

그러는 너는 얼마나 깨끗한가 보자.

 

 

 

현실의 조폭에게 의리 따위는 없다.

이익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보스와 간부들의 이익이 있을 뿐이다.

말단 조직원들은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조직에 이용당하는 호구에 불과하다.

이득을 분배받는 공범씩이나 되지도 못한다.

 

 

 

내부고발자들은 그들이 어떤 동기를 가졌든

결과적으로 당신의 몫을 가로챈 권력자들의 치불르 폭로하여

당신에게 이득을 주는 사람이다.

 

 

 

제보자는 진실을 밝히는 계기일 뿐이다.

한 점 티끌 없이 고결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누가 당신에게 이익을 주고 누가 당신에게 손해를 끼치는지

정신차리고 보아야 한다.

 

 

 

내부고발자가 시민 이익의 대변자로 보호받고

보상받아야 권력자들이 긴장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감시다. 눈먼 의리가 아니다.

 

 

 

스웨덴의 이케아는 이른바 '모듈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곳에서는 디자인과 제품 품질관리만 하고

그 외 생산 공정은 중국, 인도, 베트남,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저임금 국가에서 외주로 이루어진다.

 

 

 

문명의 작동을 정지하면

인간이란 쉽사리 동물에 가까운 원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 본성이 90퍼센트 침팬지에 가깝다고 본다.

침팬지는 영장류 중 가장 포악하다.

영역권을 침범한 다른 무리 침팬지를 발견하면

떼로 공격하여 찢어죽여 먹어치운다.

 

 

 

악을 행하는 악마보다

선악 구분조차 없는 백지 상태의 야수가 더 무섭다.

이 야수를 문명의 굴레에서 풀어준 것은

무서불위의 정치권력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인간사회의 끔찍한 면만 보면

비관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시야를 넓혀 오랜 역사를 관찰해보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폭력성을 제어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향해 놀랍게 진보해왔다.

 

 

 

독재자들은 그런 정서를 잘 자극하여

적절한 가상의 적을 던져줌으로써 대중의 맹목적 분노를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활용한다.

 

 

 

복잡한 문제의 답은 의외로 단순할 때가 많다.

 

 

 

높은 세 부담을 북유럽 사람들이 감수하는 것은

내가 낸 세금이 효율적으로 쓰여서 반드시 내게

혜택이 돌아온다는 신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렴하고 유능한 정부와 공무원들이

오랫동안 실적으로 그런 신뢰를 얻어낸 것이다.

사회를 바꾸려면 도덕적인 것만으로 부족하고

유능해야 한다.

 

 

 

미국사회에서는 지위가 높든 낮든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영웅으로 존중해주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는 존재다.

어릴 때부터 잘하든 못하든 뭔가를 책임지고 하는 것 자체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하고 못한 부분은 감싸주고 격려하는 문화가

기꺼이 책임지는 어른을 만들어낸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이런 문화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책임자를

결정 장애와 도피심리로 몰아넣는 측면이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영미식의 실용주의 가치관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전제 아래 해야 할 의무를 다 이행했다면 과감하게 면책한다.

결과가 제 아무리 중대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게하는 사회의 비결인지도 모른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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