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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장강명-2011) 본문
저는요, 젊은이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 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 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 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하는 거잖아요.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젊은 남자들을 다루기는 특히 쉬워요.
젊은 남자들이 예쁜 여자애의 관심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아요?"
"예쁜 여자애랑 섹스하는 거?"
"예쁜 여자애에게 무시 당하지 않는 거요."
민주시대의 사람들이 고매한 야심을 갖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그들의 재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재산을 늘리기 위해
너무 격렬하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마되지 않는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동원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시야를 급속히 제한시킬 수밖에 없고
그들의 영향력 또한 줄어든다.
(미국의 민주주의-A.토크빌)
우리는 본성상 남의 시선을,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 신경 쓰는 존재거든.
너희도 죽기 전에 마지막 할 일이
하드디스크의 야동 지우는 거라고 농담하잖아.
"시시해. 별로 위대하지 않아.
시시한 일을 추구하면 사람의 값어치도 낮아져.
실패하더라도 굉장한 걸 쫓아야 해."
재키가 말을 잘랐다.
"그럼 뭐가 위대한 일이지?"
"아무도 전에 시도하지 못했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
그 일 후에는 모든 사람의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것.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그런 일.
진화론이나 상대성이론 같은 것."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 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세상엔 돼지새끼들이 참 많아.
누군가 비범한 개인이라면 그 사람이 지닌 색을
세상에 펼칠 수 있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이 세상은 너무 하얘서 거기에 우리가 뭘 보태고
말고 할 게 없다고. 너도 돼지니?"
이 최후의 인간은 타인보다 훌륭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따위는 털끝만큼도
갖고있지 않으며, 그와 같은 욕망 없이 인간은
어떠한 미덕이나 업적도 이룰 수 없다.
자신의 행복에 만족하고, 하찮은 욕망을 뛰어넘을 수 없는
자신에게 아무런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 최후의 인간은
요컨대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인 것이다.
(역사의 종말-프랜시스 후쿠야마)
무너진 간이 옷장을 일으키고 다시 너트를 죄면서
나는 투지를 불태웠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애를 낳지 않고 그 대신 남들이 좆같이 양육비에 쓰는 돈을
전부 유흥비로 쓰면서 다시는, 다시는 씨발
이렇게 궁상맞게 살지 않을 거야.
위대한 일을 할 기회를 박탈당한 세대는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출세나 개인적인 성공과 같은
보다 작은 성취에 매달리게 된다.
그런데 완성된 사회는 개인적인 성공에 대해
사실상 단 하나의 평가 기준만 지니고 있다.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세대의 젊은이는
부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야망을 증명하려면
돈을 버는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 외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 가치를 주장할 다른 방법이 없다.
물을 인정할 수 없는 물고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뿐이다.
직장과 직업이 한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결정 짓고,
사회적 신분이 그 사람의 내면과 성격을 좌우하는 것 같았으며,
나는 하급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하급 공무원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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