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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1948) 본문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도 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다.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 사람하고 거의 대화를 못 나눕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입니다.
저는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그 당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따위를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저 혼자 언제나 기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웃고 있습니다.
그것 또한 제 어린 소견의 서글픈 익살의 일종이었던 것입니다.
싫은 것을 싫다고 하지도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도 쭈뼛쭈뼛 훔치듯이 전혀 즐기지 못하고,
그러고는 표현할 길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습니다.
(...) 이것은 뒷날 저의 소위 '부끄럼 많은 생애'의
큰 원인이 되기도 한 성격의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이미 저는 하녀와 머슴한테서 서글픈 일을 배웠고 순결을 잃었습니다.
어린아이한테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가운데서도
가장 추악하고 천박하고 잔인한 범죄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참았습니다.
그것으로 또 한 가지 일간의 특질을 알게 됐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힘없이 웃었습니다.
만일 제가 진실을 말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었다면 당당하게 그들의 범죄를 아버지 어머니한테
일러바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 어머니조차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에게 호소한다. 저는 그런 수단에는 조금도 기대를 걸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한테 호소해도, 어머니한테 호소해도, 순경한테 호소해도, 정부에 호소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의 논리에 져버리는 게 고작 아닐까.
틀림 없이 편파적일 게 뻔해. 필경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헛일이다.
나는 역시 아무것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참고,
그리고 익살꾼 노릇을 계속해 갈 수밖에 없다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이 저를 죽여줬으면 하고 바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남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술, 담배, 창녀, 그런 것들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상당히 괜찮은 수단이라는 사실을 저도 이윽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수단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제 소유물을 모두 팔아치워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속을 알 수 없는 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다.
욕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허영이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색과 욕,
이렇게 두 개를 나란히 늘어놓고 보아도 부족한 그 무엇.
그 당시 제 마음은 당원이 되고 체포되어서 평생을 형무소에서 보내게 된다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이 세상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매일 밤 잠 못 이루며 지옥에서 신음하기 보다는
오히려 감옥 쪽이 편할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디 좀 보여줘 봐요."
죽어도 안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면
아이 싫어, 어머나 싫어요 하면서 좋아하는 꼴이라니.
정말 역겹고 흥이 깨질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부름이라도 시키자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
"괜찮아요 돈 따위."
기뻐하며 일어섭니다. 심부름을 시킨다는 것은 결코 여자를 실망시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여자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 또한 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돈 떨어지는 날이 인연 끊어지는 날"이라는 속담은 말이야,
세상에서 하는 해석처럼 돈이 떨어지면 여자한테 버림받는다는 뜻이 아니란 말이야.
남자가 돈이 떨어지면 자연히 의기소침해지고 못쓰게 되고 웃는 소리에도 힘이 없어지고
괜히 비뚤어지거나 해서 말이야. 끝내는 자포자기 해져서 남자 쪽에서 여자를 버리게 되거든.
넙치의 말투에는,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말투에는
이처럼 까다롭고 미묘한 복잡함이 있어서, 거의 무익하게 생각되는
이런 엄중한 경계와 무수한 성가신 술책에 저는 언제나 당혹하고 에이 귀찮아.
아무래도 상관없어. 라는 기분이 되어 농담으로 돌리거나 무언으로 수긍하고,
말하자면 패배자의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에게 호감을 살 줄은 알았지만 남을 사랑하는 능력에는 결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저는 이 세상 인간들에게 과연 '사랑'하는 능력이 있는지 어떤지 대단히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눈치가 빠른 게 무척 고생하면서 자란 사람 같네요. 가엾게도."
"...... 당신을 보고 있으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뭔가 해주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져.
...... 언제나 쭈뼛쭈뼛 겁먹고, 그러면서도 익살스럽고, ......가끔 혼자 굉장히 침울해하고
있으면 그 모습이 더 여자의 마음을 흔들거든."
'너는 너 자신의 끔직함, 기괴함, 악랄함, 능청맞음, 요괴성을 알아라!'
세상,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의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럴싸한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 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정의가 인생의 지침이라고?
그렇다면 피로 물든 전쟁터에
암살자의 칼끝에
어떤 정의가 깃들어 있다는 건가?
아름답고도 끔직한 것은 이 세상이니
연약한 사람의 자식은 짊어질 수 없을 만큼의 짐을 짊어지고
아아, 더러움을 모르는 처녀성의 숭고함.
나는 여태껏 나보다 어린 처녀랑 자본 적이 없다. 결혼하자.
그 때문에 나중에 아무리 큰 비애가 닥친다 해도 상관없다.
난폭할 만큼 큰 기쁨이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상관없다.
처녀의 아름다움이라는 건 바보 같은 시인들의 달콤하고
감상적인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세상에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었구나.
그렇게 해서 이윽고 저희는 결혼했고, 그로써 얻은 기쁨은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 후에 온 비애는 처참이라고 해도 모자랄 만큼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습니다.
저에게 '세상'은 역시 바닥 모를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저를 마음속으로부터 믿어주는 이 어린 신부가 하는 말을 듣고,
그 행동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워서, 나도 어쩌면 차차 인간다운 것이 되어서
비참하게 죽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달콤한 생각이 희미하게
가슴속을 훈훈하게 덥혀주기 시작하던 참에 호리키가 다시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옛날부터 인간 자격이 없는 어린아이였던 것입니다.
"악과 죄는 다른가?"
"다르다고 생각해. 선악의 개념은 인간이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아.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낸 도덕이라는 것을 말로 표현한 거지."
"이봐! 엉뚱한 잠두콩이야. 이리 좀 와봐!"
호리키의 목소리도 안색도 변해 있었습니다.
호리키가 방금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아랯으에 갔다고 생각하자마자 되돌아온 것입니다.
"뭔데?"
묘하게 살기등등해진 우리 둘은 옥상에서 2층으로 내려갔고,
2층에서 다시 아래층 우리 방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서
호리키는 멈춰서더니 "봐!"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우리 방 위의 작은 창이 열려 있었고, 그곳으로 방 안이 보였습니다.
젓깃불 아래 두 마리 짐승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찔어찔 현기증이 나면서 이 또한 인간의 모습이야,
이 또한 인간의 모습이야, 놀랄 것 없어 등등을 거친 호흡과 함께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요시코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계단에 못 박힌 듯 서있었습니다.
호리키가 커다랗게 기침 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혼자 도망치듯 다시 옥상으로 뛰어 올라와 드러누워 비를 머금은 여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그때 저를 엄습한 감정은 노여움도 아니고 혐오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엄청난 공포였습니다.
요시코가 더럽혀졌다는 사실보다도 요시코의 신뢰가 더렵혀졌다는 사실이
그 뒤로 오래오래, 저한테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큰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저처럼 비루하게 쭈뼛쭈뼛 남의 안색만 살피고 남을 믿는 능력에 금이 가버린 자에게
요시코의 순결무구한 신뢰심은 그야말로 아오바 폭포처럼 상큼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룻밤 사이에 누런 오수로 변해버렸습니다.
보세요. 요시코는 그날 밤부터 제 일비일소에조차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봐." 하고 부르면 흠칫해서 눈길을 어디 두어야 할지 몰라 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웃기려고 해도, 아무리 익살을 떨어도 절절매고, 벌벌 떨고,
무턱대고 저에게 경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과연 무구한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요?
남편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었고,
생각하면 모든 게 제 잘못인 것처럼 생각되었고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유일하게 믿었던 장점에조차 의혹을 품게 된 저는 더 이상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그저 알코올에 손을 뻗칠 뿐이었습니다.
"요시코와 갈라지게 해주세요."
저 자신도 뜻밖인 말이 나왔습니다.
지옥.
이 지옥에서 도망칠 최후의 수단.
이번에도 실패하면 이제는 목을 매는 수밖에 없다고.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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