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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본문
눈을 뜨면 씻고 출근합니다.
세 끼 밥을 챙겨 먹고 퇴근하면
오염된 옷을 빨래합니다.
일어나는 일, 먹는 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일.
이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반복이라는 지옥이 아닐까요.
강남에 집이 있는 사람, 단칸방 조차 없이 길바닥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 삶의 차이는 있겠지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지 않은 자와 표면적인 힘듦의 차이는 있겠으나
돈이 많으면 많은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있죠.
당신은 두 날 중에 어떤 날이 더욱 많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모든 일은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다고 하신다면 그것은 지극히 삶을
주관적인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답은 여기에 있겠지요.
모든 답은 나 자신에게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개개인의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 지구인을 한 ‘종’으로서
바라보고 싶은 것입니다.
예컨대,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는 톱스타라고 한다면 이미지로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억제하고, 숨고, 변형해야 하는 불편한 삶 속에 스스로를 넣는 형국이 되어 버리는 것이고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재벌이라면 이를 이용하려드는 정치인들의 도청과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부와 명예라는 달콤함의 성질들을 덜어내고 만인의 공통적인 이 ‘반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에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삶이 꼭 천국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당신은 어떨 때 가장 행복하신가요,
먹을 때?
섹스할 때?
잘 때?
쉴 때?
인간의 욕구는 인간으로 태어남에 따라 거스를 수 없는 강제적 반복 행위입니다.
일례로 먹을 때의 행복은 살기 위한 반복 행위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감정이지 행복하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지요. 본질적으로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니까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되지 않느냐라고 물어보실 수 있겠지요.
긍정과 부정 또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 감정일텐데,
지나쳐가는 저 길가의 연못이 누군가엔 긍정이고 누군가엔 또 부정이라고 한다면
그 답이 옳다 그르다는 또 누가 기준하여 말할 수 있을까요.
세상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고 한다면 바로 변수입니다.
앞 일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불안이 따릅니다. 설렘이 따르기도 하지요.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싫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니
매일 기대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불안한 것도 아니지요.
그저 또 하루 일어나 씻고 일하고 먹고 자고 싸고 씻는 이 반복 속에서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습니다.
어쩌면 남은 여생을 사는 일이 참 바보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매일 그리 씻고 싶으신지요,
일하고 싶으신지요, 불안 속의 작은 몇몇 행복에 삶이 기쁘다
스스로 긍정의 최면을 걸어 나가고 싶으신지요,
어쩌면 이 세상을 가장 빨리 종료하는 사람이 지옥이라는 세상을 탈출하는
가장 현명한 용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밤 자살을 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 저의 지옥 속에 작은 행복을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각자의 삶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시길 권합니다.
-2021년 12월 24일 이재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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