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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김어준-2008)

2e2e 2021. 9. 1. 00:34

참으로 불친절해 보이는 따가운 수염의 그는

말도 참 따갑게 한다.

듣는 이들에 따라 따갑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것인데,

나는 즐겁게도 시원한 쪽에 속한다.

내 이십 대 역사에 그의 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방점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곳, 내 안에.

어떤 선택도 정답이라 말할 수 없다면

불확실한 내일로 불투명한 행복을 유보하는 우매한 행동은 하지 말 것.

다시 말해 '하고싶은 것을 지금 당장 할 것.'

애초에 가이드라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곳들, 만나고 싶은 자들 따위의 리스트를 만들라.

그리고 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라.

사람이 왜 사느냐, 그 리스트를 지워가며

삶의 코너에서 닥쳐오는 놀라움과 즐거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만끽하려 산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건투를 빈다.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만약 내가 서울대를 갔더라면

분명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수 많은 가치 중 겨우 공부 하나

잘하는 걸 가지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우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린 시절의 편협하고 유치한

멘탈리티, 그걸 결코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을 게다.

 

 

 

다 조까라 그래.

타인 규범이 당신 삶에 우선할 수 없다.

당신, 생겨먹은 대로 사시라. 그래도 된다.

 

 

 

노후를 대비해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참고 절약해 노후를 대비하라는 말은,

나한테 늙음을 위해 젊음을 유보하라는 말로 들린다.

 

 

 

실제 당신 삶 중 상당 부분은 어느날 갑자기

닥쳐온 우연에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충분히 엄숙하고 충분히 집단적이며

충분히 도덕적인 당신, 이제 양아치가 돼라.

개인과 조직 사이에서 갈등할 때,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언제나 그렇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비장하지 않는 독립군인 채로,

당신 자신이어야 한다. 그렇게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각 없이는 개인의 자존도 없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양아치가 돼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장이 직장에서

살아남아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란 점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당신이 갖지 못한 어떤 능력일테다.

그러니 그 양반을 깔보는 마음부터 일단 버리시라.

 

 

 

이것 하나는 반드시 기억해두시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그와의 관계,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다. 그러니 그를 가소롭게 여기거나

하찮은 인간으로 여기는 우를 범하지 마시라.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말이다.

인간사 새옹지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자기만 자기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자기는 외면하거나 모른척한다.

때론 남들이 다 아는, 명백한 나쁜 자기도

여러 방어기제를 동원해 부정해버린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데 자기만 자기가 그러는 줄 모르는거지.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산다.

 

 

 

당신은 당신 행복 위해 이 땅에 온거다.

자기 인생 갖고 소설 쓰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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