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book

칼자국 (김애란-2018)

2e2e 2021. 8. 31. 23:56

고개 뒤로 늘어선 자국이 꽤나 멀게 느껴진다.

그 길이 만큼이나 살아있는 나의 부모 또한 점점 희미해져 간다.

거센 장마의 끝자락, 처마 아래 위태롭게 몸을 던지는 빗조각처럼

고요해서 더 크게 울린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엄마를, 아버지를 보고 나면 장면 하나씩을 꾹꾹 눌러쓰게 된다.

잉크가 없어도 자국 내어, 더듬어라도 기억 할 수 있게 기록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모든 장이 아까운 나의 책에도 언제나 쉽게 펼쳐지는 접힌 구간은 있다.

 

5p-나의 놀이터이자 집이었던 행운당구장,

작은 단칸방 바닥을 닦다 갑자기 쓰러진 엄마가 죽은 척 연기였다는 사실이 분하고 다행스러워

목놓아 울었던 기억.

 

9p-기대에 잔뜩 부풀어 소녀처럼 웃음 짓던 엄마의 새로운 시작.

"이제 엄마도 잘 할 수 있어!" 내가 좋아했던 호빵맨 인형이 먼저 자리 잡았던 화장품 가게.

그곳은 곧 엄마의 뛰어난 학구열로, 작은 한 켠 누나와 나의 공부방이 되기도 했는데,

그 때 그 열기는 고3 수험생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오후 10시 무렵이 되면 엄마는 가게를, 누나와 나는 공부방 셔터를

그것은 아버지께서 통쾌하게 내려주셨다.

문을 잠글때면 사설 경비업체 기계가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애써 생기를 담아 인사했는데,

그 날은 왜인지 엄마가 나에게만 이름을 불러주며 그 기계를 따라했다.

"이재진씨, 수고하셨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누나는 그간 쌓인 서운함을 울음과 함께 토해냈다.

"엄마는 왜 자꾸 재진이한테만 인사해주는데!"

'그 날'은 하루가 아니었던 것이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어둑한 우리의 퇴근길, 누나의 메아리가 아직까지 멈추지 않는다.

 

15~16p-아버지와는 오래 서먹했다. 무서운 존재였고. 그래서 거실 장판이 3월에 얼어버린 연못같았다.

한 번씩 깨지는 날엔 엄마와 벌벌 떨며 허우적 대기도 했다. 소심했던 나는 그 설움을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어, 한 자도 채워지지 못 하고 버려질 것만 같은 어느 기업 사은품 수첩에

내 오장육부를 꺼내어 붙였다. 기록이란 위험한 행위였다. 얼마 뒤 내 다이어리는 얇아져 있었고,

범인은 나의 편이라 생각했던 엄마였다. 11m 막타워에 올라선 아찔한 기분이었다. 방송으로 송출이 되었다면

8할이 모자이크였을 내 기록은 바로 아버지 손에 쥐어졌고, 그 뒤로 멀리 출장을 가셨다.

식탁 위에 편지 한 장이 놓여있었는데, 그것은 아버지께 군대 21개월 동안에서도 받지 못했던

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였다.

몇 줄 안되는 글자의 마지막 문장, 미안하다는 말에 살면서 제일 슬프게 울었던 기억이다.

칼보다 날카로운 펜으로 아버지를 찔렀고, 당신의 상처보다 죄책감에 허덕이고 있을 나를 위해

아주 오래 자리를 뜨신 것이다.

 

오랜 기억과 함께 나의 부모는 더 빠르게 희미해져 가지만 그것을 알고도 나는 어찌할 바 모르겠다.

아픔으로 가득한 29페이지짜리 우리집 칼자국은 여전히 생존을 향한 몸부림으로 한 해를 넘기고 있다.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

 

​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

 

​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 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

 

​

나는 새끼답게 마구 게으르고

건방져지고 싶었다.

​

 

​

도마질 소리는 맥박처럼

집 안을 메웠다.

​

 

​

큰 '다라이' 안에 상체를 박고

양념을 버무리던 어머니의 모습은

가게 앞 오랜 풍경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다라이'로 통하는 저 지하 세계에

빠져들지 않으려 버둥대는 것처럼 보였다.

​

​

​

나는 어머니가 잘 익은 배추 한 포기를 꺼내

막 썰었을 때, 순하게 숨 죽은 배추 줄기 사이로

신선한 핏물이 흘러나오던 김칫국과

자그마한 기포를 기억한다.

​

 

​

어머니가 국수를 삶으면

나는 그 옆에 서서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렸다.

​

 

​

어둑한 부엌 안, 환풍기 사이로 들어오던

햇빛의 뼈

 

 

 

오른손이 칼질을 하는 동안

왼손 손가락 두 개는 칼 박자에 맞춰

아장아장 뒷걸음 쳤다.

​

 

​

그 후로 어머니는 손 안에 반지의 반짝임이 아닌

식칼의 번뜩임을 쥐고 살았다.

​

 

​

서울 온다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어머니는

산더미만큼 쌓인 상품과 미로 같은 통로에서 주눅 들어 있었다.

부모답게 뭔가 주도하고 잔소리도 하고 싶은데

거기에선 자신이 할 일이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건을 신속하게 알아보고 선택한 건 내 쪽이었다.

어머니는 묵묵히 카트를 밀고 나를 따라왔다.

화장을 고치지 않은 어머니의 콧잔등은 번들거렸다.

깔끔하게 올린 쪽머리의 잔털이 하나둘 빠져나와 푸석해보였다.

우리는 식품 코너에 들러 어묵을 먹었다.

나는 입을 한껏 벌려 어묵을 먹는 어머니를 보고

'아, 엄마는 음식을 저렇게 먹는구나. 늘 저렇게 먹었었구나... ... .'

생각했다. 어머니는 순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

 

쾌활하고 오만한 어머니에게 단 하나 약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순하고 내성적인 남자였다.

갖은 추파를 뿌리치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선택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 자기 집에서

어머니가 사는 곳까지 몇십 리 길을 걸어가곤 했다.

용기가 안 나, 양쪽 호주머니에 소주를 넣고 마셔 가면서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좋아한단 말 한마디 못 하고

다시 몇십 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도보로 세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상황은 자신이 만들고 결정은 어머니가 하게 하는.

하여, 칼 잘 쓰는 어머니가 지금까지도 못 자르는 게 있으니

그것은 단 하나 부부의 연이다.

​

​

 

칼은 도마 위를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

​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에게 애인이 있는 것처럼

어머니에게도 남자가 있길 바랐다.

​​

 

​

내가 본 시골의 부정은 티브이 드라마처럼

심각하고 치명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때로 명랑하며, 은밀한 동시에

소란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시골에서 부는 그 바람이 오래전부터

세계를 움직여 온 하나의 '운동'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것을 실수라, 누군가는 사랑이라

누군가는 불륜이라 했다.

나는 그것의 온당한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言)이다.

​

​

 

'적어도 언제 언제까지'라는

몸의 시계가 내가 졸업할 때까지라든가

시집갈 때까지와 같은 경제적인 시간의 마디가

어머니는 자기가 정해 놓은 시간보다

빨리 시들어 갔다.

​

 

​

나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오래전, 내 앞에서 몸을 떨다

죽은 시늉을 했을 때처럼 묘하게 웃고 있었다.

싱그럽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수상쩍고

괘씸한 웃음이었다.